"인수금융 추진이 또 다른 지원으로 비쳐질까 두렵습니다." 현대상선 자동차선단 매각업무를 맡고 있는 산업은행 실무자 A씨의 하소연이다. 정치권 일각에선 이미 그런 주장이 나오고 있다. 산은은 그러나 의혹의 눈초리에는 아랑곳 없이 '현대상선 살리기'에 골몰하고 있다. 한 달 가까이 계속되는 현대상선에 대한 부당대출 시비로 은행은 벌집 쑤신 듯한 분위기다. 그렇다고 상선의 자금난을 결코 나 몰라라 할 수 없다는 게 산은의 입장이다. "부도가 났다고 칩시다.기업들의 연말 수출특수가 날아가는 것은 물론이고 한국경제 전체의 물류시스템이 완전히 망가질 게 뻔합니다." 사실 맞다. 연간 1백50만개의 수출화물 컨테이너를 실어나르는 현대상선이 부도를 맞는다면 우리 경제는 일파만파의 충격에 휩싸일 게 분명하다. 문제는 상선 구조조정을 주도해온 산은이 더 이상 전면에 나서기 어렵다는 것. 다른 은행들이 나서주면 좋겠지만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 정도를 제외하면 '골치 아픈 현대상선'에 더 이상 발을 담그고 싶어하지 않는 분위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동차 선단 매각을 위한 인수금융(신디케이트론) 구성 방안을 놓고 채권단내 이견이 나오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일부 은행들은 자동차 선단 매각대금을 채권 회수에 연계하는 조건으로 인수금융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특유의 '자행(自行) 이기주의'가 다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산은 실무자들은 상황을 힘겹게 조율하면서 한편으로는 상선 부채의 만기를 연장하기 위해 밤 늦게까지 다른 금융기관들을 찾아다니고 있다. 당연히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특히 '대북 지원설'의 실마리를 풀어낼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이 사태 진정을 위해 직접 나서지 않고 있다는 데 큰 불만을 갖고 있다. 물론 지금은 이런 푸념을 할 만큼 한가하지 않다고 말한다. A씨는 국정감사에 이어 다음주 감사원의 특별감사를 준비하느라 벌써 3주일째 야근을 하고 있다. 해외를 떠돌고 있는 정 회장이 이런 산은의 고충을 알고나 있는지 궁금할 뿐이다. 조일훈 산업부 대기업팀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