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사원신분증 신용카드…. 여기에 아파트ㆍ자동차 열쇠까지 들고 다니자면 무겁기 짝이 없는 데다 행여 잃어버릴까 걱정이다. 컴퓨터와 통신 나노기술의 발달은 이런 분실이나 위조에 대한 염려를 덜어준다. '증' 없이 '내가 누군지' 증명하고 각종 결제가 가능한 인증 및 보안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까닭이다. 여러 기능을 모은 스마트카드나 지문과 홍채 등을 이용한 생체인식 시스템이 대표적이거니와 미국에선 개인의 신상 의료기록 등을 담은 쌀알 크기 생체칩이 개발돼 팔이나 엉덩이에 이식하는데 이르렀다. 미아 확인 혹은 응급사태가 생겼을 때 환자의 신원과 전화번호 병력 투약기록 등을 빨리 파악하도록 고안된 것이지만 신분증 및 신용카드를 대신할지도 모른다는 소식이다. 생체칩은 좀더 발전되면 신경세포가 내는 미세한 전기신호를 인식,생각을 외부로 전달하게 될 수도 있다고 한다. 누군가에게 'e메일을 띄워야지' 생각하면 칩이 알아서 보낸다는 것이다. 컴퓨터와 통신 생명공학의 통합이 이처럼 커뮤니케이션의 방법을 송두리째바꾸는 가운데 이번엔 명함을 주고 받고 전화번호를 입력하는 수고 없이 악수만 하면 이름 전화번호 등이 상대방 휴대폰에 자동입력되는 '인체통신' 장치가 일본에서 개발됐다는 보도다. 신체 접촉을 이용한 통신인 만큼 혼선이나 도청 우려가 적고 신분증이나 신용카드 등을 소지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놀라운 기술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복잡한 지하철이나 거리에서 낯선 사람과 부딪치거나 누군가 내 정보를 빼내려 일부러 접촉하면 어쩔 것인가.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곳곳에 설치된 홍채인식기 때문에 남의 눈을 이식하는 것밖엔 도망칠 길이 없는 개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안그래도 엉뚱한 데서 휴대전화나 e메일이 오면 영 찜찜한 마당에 슬쩍 닿기만 해도 '내가 누군지' 드러난다는 건 무작정 반갑지만은 않다. 편한 것도 좋지만 이러다 아예 사생활이라곤 없이 빅 브러더가 감시하는 '파놉티콘'(원형감옥)에 갇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