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는 누구에게 줄을 대서 다음 정권에는 앞길이…." 임기말 관가에서 노골적으로 나도는 말들이다. 그만큼 공직기강 해이현상이 심각하다는 얘기다. 이런 분위기가 만연한 가운데 존재 자체가 비밀인 정보부대 최고책임자가 대북 감청내용을 폭로하는가 하면 국회의원이 국가정보원 도청자료를 근거로 했다며 '한화그룹의 대한생명 인수로비 의혹'을 제기하는 일이 벌어졌다. 정보부대 책임자의 이같은 행동을 놓고도 공직자의 자세를 논하기 이전에 대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 때문에 그의 행동에 대해 '양심선언' 측면에서 봐야 한다는 주장과 전형적인 임기말 '줄서기'라는 비판이 공존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소위 '병풍(兵風)'사건과 관련해 국방부 상관과 부하가 내사 결과를 정반대로 얘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요즘 한나라당에는 고급 정보들이 쏟아져 들어가고 있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최근 터져나온 '4억달러 대북 지원설' 등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빌미만 잡히면 상대방을 '한방에 날려 보낼 수도 있다'는 말들도 정치권에서 나돈다. 이 때문에 여당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현정부의 고위공직자 출신인 증인을 상대로 질의할 때 질문한 것보다 더 많은 내용을 증언할까 지레 겁을 먹는 사례도 목격하게 된다. 중앙정부에서 내려간 지시가 지방자치단체에서 묵살되는 경우도 많다. 자치단체장의 인사전횡이 단적인 예다. 행정자치부 관계자는 "단체장들이 규정을 어겨가며 무리하게 '자기 사람'을 발탁하는 경우가 많다"며 "지침을 내려보내지만 임기말이어서 무시당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마침내 정부가 이에 대해 '칼'을 빼들었다. 공직기강 감찰을 실시키로 한데 이어 김석수 총리는 8일 정치중립 등을 강조하는 특별지시를 내렸다. 문제는 올 들어서만도 수차례 공직기강 점검을 했지만 바로잡히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번번이 별 성과없이 흐지부지되다보니 이번의 공직기강 점검도 '약발'이 제대로 먹히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정부의 사정기능이 '종이호랑이'가 된 지 오랜 것 같다. 홍영식 정치부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