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사상최저치를 기록하는 증시는 벌써부터 한파에 시달리고 있다. 투자심리는 꽁꽁 얼어붙었고 주변을 둘러봐도 온통 악재(惡材) 투성이다. 전문가들은 미국 경제의 불확실성과 이라크전쟁 발발가능성 등 '외풍'(外風)을 주범으로 지목한다. 그러나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증시 저평가) 현상이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모든 문제를 외풍 탓으로만 돌리는 태도는 비겁해 보인다. 전문가와 금융정책 당국자들은 틈만 나면 '한국 증시가 저평가됐다'는 말을 되풀이해 왔다. 그러면서도 정작 저평가의 근본원인에 대해선 진지한 고민이 부족했다. 외풍도 따지고 보면 국내의 열악한 수급여건과 낙후된 제도가 불러온 면이 없지 않다. 국내 증시의 '최대주주'는 누가 뭐래도 외국인이다. 외국인은 국내 시가총액의 35% 가량을 보유하고 있다. 국내 기관의 비중은 고작 10%대다. 기관 비중은 지난97년 26.3%를 정점으로 이후 줄곧 13∼17%대에 머물고 있다. 개인투자자가 루머(풍문)에 현혹돼 단타에 열을 올리고 국내 기관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사이 외국인은 국내 증시의 '안방'을 차지했다. 외풍에 취약한 천수답(天水畓) 증시를 우리 스스로 초래한 셈이다. 증권 당국도 예외는 아니다. 코스닥시장이 사상 최저가로 곤두박질치고 작전이 판치는 '머니 게임장'으로 전락할 때까지 근본치유책을 세우기는커녕 미봉책으로 일관해왔다. 금융감독위원회 금융감독원뿐만 아니라 코스닥증권시장 코스닥위원회 증권업협회 등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에 바쁘다. 증시가 살아나려면 감독 기관과 투자자,기업이 함께 바뀌어야 한다. 적절한 제도개선은 물론 건전한 투자문화 정착과 주주중시 경영풍토 확립도 절실하다. 지금 자연의 계절은 가을이지만 증시의 계절은 한겨울이다. 외풍에도 견뎌낼 수 있는 훈풍을 내부에서 만들어내야 매서운 한파를 견뎌낼 수 있다. '계절이 바뀔 때 장세도 바뀐다'는 증시격언 보다 '정권이 바뀔 때 장세가 바뀐다'는 말이 솔깃해지는 요즘 '만년 저평가국'의 멍에를 언제 벗어버릴지 안타깝기만 하다. 이건호 증권부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