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술경쟁력 확보가 시급하다. 기술경쟁력이 없는 산업은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다. 정부에서도 마찬가지다. 굳이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 시대를 들먹일 필요가 없다. 기술을 모르고는 정책을 제대로 판단할 수가 없다. 선진국에서 테크노크라트를 키우고 그들을 중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딴판이다. 산업기술 등을 다루는 중앙행정부처의 국장급 자리를 비이공계 출신들이 차지하고 있다. 엔지니어 출신을 필요로 하는 복수직에도 이공계 출신들은 찬밥신세다. 부처간 업무조정을 하는 국무조정실이나 예산을 나눠 주는 기획예산처에는 기술직 공무원이 한 명도 없다. 민간인 전문인력을 활용하기 위해 마련된 개방직에도 이공계 출신들은 푸대접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무원 조직이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 이래서는 나라도 강해질 수 없다. 이공계 출신들이 공직사회에서도 제대로 대우받을 수 있는 풍토가 마련돼야 한다. ◆ 고시를 개혁하자 =기술직 최고시험인 기술고시의 정원은 50명이다. 전기 화공 등 직렬별로 2~10명씩 뽑는다. 이는 5급 공무원 임용시험 선발인원 3백31명의 15.1%에 불과하다. 정원이 적은 것 뿐만 아니다. 시험과목도 전공일색이다. 이로 인해 임용된 뒤에도 업무추진에 어려움을 겪기가 일쑤다. 일부에서는 고시제도 자체를 아예 폐지하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균등한 공직진출 기회 제공 △채용의 공정성 및 투명성 등 장점을 갖고 있는 고시제도를 없애는 것은 문제가 있다. 따라서 다양한 전문가가 공직사회에 진출할 수 있도록 고시제도를 개편해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기술고시 응시자중 석.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에게는 시험과목의 일부를 면제해줄 필요가 있다. 채용인원도 단계적으로 늘려야 한다. 법률.경제적 지식이나 조직관리와 관련된 과목을 신설하는 방안도 검토돼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고등고시를 통합할 필요도 있다. ◆ 전문가 특별채용 늘리자 =연구관 의무 약무 항공 기상 자원 등 특수분야에서는 박사나 의사 등을 사무관으로 특채할 수 있게 돼 있다. 지난해엔 81명을 채용했다. 그러나 수시채용에다 부실한 교육, 열악한 처우 등으로 인해 쉽게 이직하는 등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부처별로 특채 인원을 미리 접수해 경쟁시험을 거쳐 선발할 필요가 있다. 특채를 정기적이며 공식적인,이공계 출신들의 고급기술 및 기술정책 공무원 등용창구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특채자들의 정책과 행정업무 능력을 키워 주고 공직에 대한 이해를 넓히기 위해 합격자를 1년가량 교육시킬 필요가 있다. 특채된 뒤 일정기간 행정고시 기술고시 합격자들과 함께 위탁교육을 시키는 것도 한가지 방안이다. 동기생화해 주자는 것이다. 석.박사 학위를 경력으로 인정해 주고 자격증에도 수당을 제대로 줘야 한다. 전문성과 경력을 중시하는 보상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현주 LG건설 엔지니어링부문 사장은 "기술직 공무원의 경영능력이 떨어진다면 이공계 출신 최고경영자(CEO)를 고위직으로 발탁하는 방안도 검토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 기술직 고위직을 늘리자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지난 8월 말 현재 중앙행정기관의 2.3급(국장급) 6백78명 중 행정직이 64.9%인 4백40명인데 비해 기술직은 8.1%인 55명에 불과하다. 행정직, 기술직 구분이 없는 나머지 1백83명(27%) 가운데는 행정직이 과반수를 차지한다. 지난 3월 말 현재 21개 중앙행정기관의 과장급 이상 복수직위 5백54명중 행정직은 전체의 57.8%인 3백20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복수직에는 기술직을 우선 임용하는 것이 시급하다는게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중.장기적으로 복수직을 기술직으로 단일화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일부에서는 복수직 임용때 일정 비율을 기술직으로 한다는 내용의 '비율할당제'를 한시적으로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행정직이 복수직을 맡기 위해선 기술정책 분야의 교육을 받도록 의무화할 필요도 있다고 덧붙인다. 경종민 KAIST 전기전자학부 교수는 "직급별로 이공계 출신의 최소비율을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 인사제도를 개혁하자 =기술직은 도시계획 토목 건축 지적 측지 등 38개 직렬로 나뉘어 있어 임용범위, 승진, 전보 등에서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많다. 이에 비해 공안행정직은 행정 세무 사회복지 등 19개 직렬로 돼 있다. 기술직의 경우 지나치게 세분화된 직렬을 바꾸거나 주요 기능별로 그룹화해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전기직이 기계직으로 갈 수 있도록 기술직 내 직렬간 교류도 허용해야 한다. 승진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3급(부이사관) 이상의 직렬을 폐지하는 방안도 검토돼야 한다. 기술직 중에서 첨단 분야에 종사하는 공무원을 분리,연구개발직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특별취재팀 strong-korea@hankyung.com [ 협찬 : 한국산업기술재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