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자동차와 대우자동차가 경차규격 확대 문제를 놓고 또다시 격돌했다. 지난해부터 경차의 '규격 확대'와 '현행 유지'를 각각 주장하며 팽팽한 공방을 펼쳤던 양사는 최근 기아가 산업자원부 건설교통부 재정경제부에 경차규격 확대를 공식 건의하면서 첨예한 대립을 보이고 있다. 기아는 특히 경차 비스토 후속모델로 개발중인 'SA'(프로젝트명)의 설계 기준을 외부에 흘리는 등 규격 확대를 위한 공개전을 서두르고 있다. 기아차는 내년 하반기에 출시할 SA에 1천㏄급 엔진을 얹고 너비는 1천6백㎜로 키우기로 했다. 국내 경차 수요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데다 경차의 수출 주력시장인 유럽에는 이같은 규격의 모델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기아는 이에 따라 정부 관계 부처에 경차의 폭을 1천6백㎜로 늘리고 엔진 배기량도 1천㏄로 확대해 줄 것을 공식 건의했다. 현행 자동차관리법상 경차는 '엔진 배기량 8백㏄ 미만,차체 길이 3천5백㎜,너비 1천5백㎜,높이 2천㎜ 이내'로 규정돼 있다. 기아 관계자는 "경차의 크기와 배기량이 지나치게 작게 규정돼 있어 국내 소비자들이 안전성과 연료 효율에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며 "유럽도 1천㏄ 차량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 수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규격 확대는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경차 규격을 확대해 수출용 차량(1천㏄)과 내수용 차량(8백㏄)을 따로 만들어야 하는 중복 투자도 사전에 막을 수 있다는 게 기아의 입장이다. 특히 세계 자동차 메이커들이 경차에도 사이드에어백을 장착하는 등 안전성을 강화하고 있으나 국내 경차 기준 폭으로는 이같은 흐름을 맞출 수 없다고 강조했다. 대우는 이에 대해 업체들이 협의를 거쳐 확정한 경차규격을 이제 와서 수정하자는 건 말도 안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대우 관계자는 "경차 규격 확대는 에너지 절감을 위한 경차제도 도입의 근본 취지를 훼손하는 것"이라며 "차량 구입비와 유지비 증가라는 부작용이 커질 것"이라고 반박했다. 특히 유럽 시장에서 8백㏄인 마티즈가 세계 3대 경차로 뽑힐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는데 새삼스럽게 배기량 문제를 들고 나오는 저의가 의심스럽다고 맞서고 있다. 경차 제도를 운용하고 있는 일본도 경차 기준을 엔진 6백60㏄에 전폭 1천4백㎜로 한국보다 더 작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대우는 기아가 경차규격 확대를 주장하는 배경에는 생산원가를 낮추기 위해 소형차 클릭과 플랫폼을 공유하려는 전략 외에도 대우가 1천㏄급 경차 생산설비가 없는 약점을 노려 마티즈의 아성을 무너뜨리려는 술수라고 맞받아치고 있다. 칼자루를 쥐고 있는 정부도 기준 변경에 고심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쉽사리 결론을 내리기는 어려운 문제"라며 "양측의 주장을 면밀히 분석하고 여론의 의견도 충분히 수렴하겠다"고 말했다. 강동균 기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