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이 현대상선에 빌려준 4천900억원이 대북자금으로 지원됐다는 논란의 실마리를 쥐고 있는 금융감독원은 금융실명법상 계좌추적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산업은행은 30일 당좌대월로 4천억원을 대출해준 2000년 6월7일 당일 현대상선이 모두 인출했다고 공식 확인했으나 현대상선은 해명을 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은 폭로 수위를 연일 높여가고 있고 현대상선의 반기 사업보고서에 당좌대월 4천억원이 기록되지 않은 점 등과 관련해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이근영 금감원장은 국정감사에서 현대상선 계좌추적에 대해 "주가조작과 관련된 분식회계라면 가능하지만 이번 경우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는 현행 금융실명법 4조1항에 `내부거래자 및 불공정거래행위 등의 조사에 필요한 경우'에는 거래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지만 당좌대월을 누락한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시세조종 등에 이용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 외부감사법상 회계조사의 대상은 사업연도 기말에 대한 감사보고서로, 반기보고서는 원칙적으로 대상이 아니라는 점도 계좌추적권 발동이 어려운 이유다. 그러나 금감원의 회계감리국이나 조사국에서 이러한 이유로 현대상선의 계좌추적은 할 수 없다 하더라도 은행검사국은 산업은행의 검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현재 금감원은 감사원과 공동으로 산업은행에 대한 검사권을 갖고 있다. 감사원법은 감사원이 정부투자.출자기관에 대해 독점적으로 검사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외환위기 이후 금감원은 산업은행법 시행령에 건전성 감독을 위한 부분적인 검사가 가능하도록 반영됐다. 또 금융실명법에 금융사고의 적출에 필요한 경우나 불건전금융거래행위의 조사에 필요한 경우, 금융실명거래 위반과 부외거래.동일인 한도 초과 등 법령위반 행위의 조사에 필요한 경우 등에도 계좌추적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실제로 금감원은 지난 3월 이용호게이트와 관련 삼애인더스와 산업은행간의 해외 전환사채 거래에 대한 검사를 벌여 산업은행에 주의적 기관경고 조치를 내린 바 있다. 당시 검사에서는 산업은행에 거래전표가 보관돼 있었고 당사자의 진술로서 관련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에 계좌추적권을 발동하지는 않았다. 금감원 관계자들은 이미 이근영 금감원장이 국정감사에서 계좌추적은 불가능하다고 밝혔기 때문에 구체적인 언급을 꺼렸지만 산업은행의 검사를 통해 "특별한 사항의 사실규명을 위해서는 계좌추적을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 금감원이 직접 계좌추적을 하지 않더라도 검사결과를 검찰에 고발해 검찰이 실시하는 방법도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계좌추적이나 검찰고발 등은 구체적인 혐의가 밝혀져야만 가능하다"며 "혐의도 산업은행에 대한 금감원의 감독목적인 대출과 관련된 관계규정의목적에 대한 합치여부만 다룰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준억 기자 justdust@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