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고창신(法古創新)이란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뜻이다. 말은 쉽지만 실천은 간단하지 않다. 옛것에 대한 깊이 있는 존중과 이해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 일제 식민사관의 영향으로 전통적인 것은 모두 업신 여기는 경향이 짙다. 화단에서도 '전통의 창조적 계승'이라는 이름 아래 한국화는 자취를 감추고 서양화와 구분할 수 없는 국적 불명의 그림들이 양산되는 상태에 이르렀다. 법고창신이 아닌 전통파괴로 치닫는 셈이다. 간송미술관(澗松美術館) 민족미술연구소는 가헌(嘉軒) 최완수(崔完秀)실장을 중심으로 이처럼 멸실 위기에 놓인 전통문화를 지키고 그 우수성을 규명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법고창신을 이루려는 이들이 모인 곳이다. 최 실장은 1966년 이래 이곳에서 간송 전형필(全鎣弼)선생의 수집품을 비롯한 문화재 연구를 통해 우리 문화의 자주성과 아름다움을 밝히는데 진력했다. 특히 중국이 아닌 한국의 자연을 독창적으로 그려낸 겸재(謙齋) 정선(鄭敾) 연구로 진경문화(眞景文化)라는 말을 창출해낸 것은 유명하다. 최 실장은 석굴암을 알려면 보이는 모습 외에 역사 속 맥락과 어느 경전에 기초하고 무엇을 구현한 건지 파악해야 하는 것처럼 미술사를 공부하거나 그림을 제대로 그리려면 미술 역사 종교까지 꿰뚫고 있어야 한다는 전제 아래 20여년동안 연구소를 찾는 대학(원)생들에게 이론과 실기를 함께 가르쳐왔다. 특히 미술학도에겐 임모(臨摸)와 사생(寫生)에 대한 엄격한 훈련을 강조했다. 간송 출신이라는 것만으로도 기초 하나는 확실한 작가로 여겨지는 건 이 때문이다. 20여년간 가르침을 받은 김천일 이태승 오병욱 조덕현 김현철 교수 등 10명의 제자들이 '가헌 선생 회갑기념 송단동연전(松檀同硏展)'을 3∼9일 서울 인사동 백악예원에서 연다는 소식이다. 이론공부팀은 논문집 '추사와 그의 시대'를 상재하고 예인들은 전시회로 보답하는 것이다. 사제간의 정을 찾아보기 힘든 지금 이해관계 없는 사숙 지인들의 이런 모습을 보는 건 행복한 일임에 틀림없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