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말 덩샤오핑이 개방을 결정했을 때 제일 먼저 만난 사람이 동남아의 화교기업인이었다. 몇년 후 선전에 경제특구를 만들었을 때 찾아와 준 외국인투자가는 미국이나 일본 기업이 아닌 바로 이들 화교기업이었다. 마오쩌둥 공산혁명의 총부리에 타도 대상 제1호로 몰려 홍콩과 싱가포르로 쫓겨갔던 그 악질(?) 자본가계급이 고마운 외국인투자가로 변신해 금의환향한 것이다. 지금 전세계에 약 4천만명의 화교들이 흩어져 세계 속의 또 다른 중국을 형성하고 있다. 화교의 역사는 5백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명나라의 정화 제독이 7차에 걸쳐 아프리카까지 대항해를 하면서 곳곳에 내려놓은 중국 상인이 그 뿌리를 현지에 내린 것이다. 이들 화교의 특성은 뛰어난 상술과 강한 회귀본능이다. 오늘날 동남아인구의 약 10%를 차지하는 화교가 이 지역 경제의 3분의 2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차라리 작은 중국이고,인도네시아는 4%의 화교가 현지 경제력의 반을 지배한다. 물론 현지인이 정치권력을 장악한 동남아 정부는 각종 현지인 우대정책을 써 화교의 경제적 지배를 견제하려 하지만 별 효과가 없는 것 같다. 더욱이 최근 중국정부가 동남아국가연합(ASEAN)과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하겠다고 적극 나선 것은 한국 일본 등 주변국가를 긴장시키고 있다. 이것이 성사되면 실질적으로 화교가 경제력을 장악한 동남아지역이 중국을 중심으로 한 거대한 황화경제권의 우산 아래 들어가게 되기 때문이다. 천년의 역사를 되돌아 볼 때 중국만큼 팽창주의적 국가는 없다. 오늘날 중국의 영토는 역사상 가장 넓다. 한때 당왕조를 좌지우지하던 위구르족은 신장성의 소수 민족으로 전락했고,청제국의 아성인 북중국에서도 만주족의 씨를 찾아볼 수 없다. 모두 한족에 동화되어버린 것이다. 이같은 중국의 역사적 팽창 과정을 찬찬히 보면 비슷한 정형이 반복되고 있다. 우선 새로운 지역에 대한 한족의 이주가 있고,생활력이 강한 이들이 현지인을 소수민족화하고 궁극적으로 그 지역을 중국화하는 것이다. 중국의 이같은 팽창주의는 다른 곳에선 그런대로 잘 되는 데 동북아를 보면 신통치 않다. 세계에서 화교가 뿌리를 못 내린,아니 쉽게 말하면 중국집을 화교가 운영하지 않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밖에 없다. 물론 한때 청상인은 구한말의 경제력을 상당 부분 장악했고,1970년대까지만 해도 산둥성 출신이 중국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한반도를 거의 떠났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화교를 괄시해 쫓아내기는 북한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 발표된 신의주경제특구는 여러 면에서 우리에게 충격을 주었지만,한가지 간과해선 안될 점은 화교권에 권토중래의 계기를 마련해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양빈을 파격적으로 발탁한 배경은 말할 것도 없이 화교자본을 유치하겠다는 것이다. 당분간 서구나 일본기업은 잘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중국의 경우도 화교기업이 진출한 후 10년이 넘어서야 서구기업이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이같은 한계를 안 북한이 '경제특구-화교자본 유치-서구기업 유치'로 이어지는 중국식 개방모델을 답습한 것이다. 신의주의 열악한 항만 여건을 고려할 때 물류는 단둥이나 다롄항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같은 점이 어우러지면 신의주특구는 남한보다 황화경제권에 편입될 우려가 크다. 이를 피하는 방법은 우리 기업이 많이 투자를 해줘야하는 데 지금 대부분의 기업은 그간의 대북사업에 멍들고 재미를 못봐 지쳐 있다. 최대 재벌이 금강산에 발을 내디뎠다가 뿌리째 흔들리고,신중한 기업들에 신의주특구는 휴전선을 가로질러 가지 않는 한 당장 물류비면에서 매력적이지 않다. 시기가 문제지만 언제고 한반도의 분단은 끝날 것이다. 우리는 폐허가 된 북한경제를 혼자 떠맡아 먹여살리기도 달갑지 않지만,빗장을 살짝 연 경제특구에 화교기업이 먼저 진출해 북한이 경제적으로 중국에 편입돼 가는 것은 더더욱 용인할 수 없다. 이런 면에서 신의주특구는 지금 우리에게 계륵이다. syahn@ccs.sogang.ac.kr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