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한 시(詩)전문지가 한국현대시 1백년의 큰 시인을 조사한 결과 소월(素月) 김정식이 으뜸으로 꼽혔다. "나 보기가 역겨워/가실 때에는/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영변에 약산 진달래꽃/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생략)" 소월의 이 '진달래꽃'은 청년시절 사랑의 가슴앓이를 해본 사람이면 한번쯤 연애편지에 읊조려 봤을 정도로 누구나의 가슴에 와닿는 친근한 시이다. '향수(鄕愁)'를 쓴 시인 정지용은 3위에 올랐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얼룩백이 황소가/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생략)" 포근하고 따뜻한 느낌이 드는 향수는 지난 88년 그의 작품이 해제된 이후 마치 '국민가요'처럼 노래로 불리면서 더욱 알려지게 됐다. 이같이 우리 시단의 대표격인 김소월 정지용이 올해로 탄생 1백주년을 맞았다. 이들 외에 '남으로 창을 내겠소'의 시인 김상용과 소설가인 '탁류'의 채만식,'벙어리 삼룡이'의 나도향,'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주요섭도 1백주년 생일을 맞았다. 민족문학작가회의와 대산문화재단은 지난주 세종문화회관 등지에서 '식민지의 노래와 꿈'이라는 주제아래 '탄생 1백주년 기념문학제'를 갖고 이들 6명의 삶과 문학을 재조명하는 기회를 마련했다. 이번 행사에서 정지용은 시창작을 예술행위로 인식한 '한국 최초의 전문시인'으로 평가받았고,채만식의 친일작품인 '여인전기'는 알레고리(표면적인 묘사 뒤에 어떤 정신적 의미를 암시)기법의 시각에서 읽으면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견해도 나왔다. 시각차가 있었긴 해도 자유혼을 빼앗긴 일제하에서 정열적인 문학활동으로 근대문학의 주춧돌을 놓았다는 점에는 의견을 같이했다. 문학제에는 후손들도 참여했는데 소월의 6남매 중 유일하게 남한에 살고 있는 3남 정호씨(71)는 생활고 때문에 시에 관심을 가질 겨를이 없었다고 털어 놓았다. 아버지의 시를 '불러도 대답없는 이름'으로 치부하며 살아온 그가 안쓰럽다는 생각이 든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