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이 싸고 서비스가 좋다면 어느 나라에서 생산된 제품인지는 더 이상 중요치 않다."


레니 망 월마트 사장은 외환위기 이후 한국 소비자들의 인식이 이렇게 바뀌었다고 표현했다.


1998년부터 지난해까지 외국인들은 한국에 3백8억달러(약 33조원.도착기준)를 직접투자 방식으로 갖고 들어왔다.


1962년부터 1997년까지 36년간 들어온 1백63억달러의 두배 가까운 금액이 4년사이 밀물처럼 들어온 것이다.


외국인 직접투자는 단기적인 투자자금과 달라 안정적인 외화를 주입해 국내 외환 보유고를 살찌우고 고용을 촉진해 왔다.



산업연구원은 외국인 직접투자가 1억달러 들어올 때마다 9백73명의 고용효과가 있다며 실업률이 가파르게 상승하던 1999년 외국자본이 9만5천명에게 일자리를 준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달러 가뭄에 시달리던 1999년 당시 우리나라 외환보유고는 2백42억원이 늘었는데 이 역시 그 해 들어온 1백억달러의 외국인 직접투자 덕분이었다.


2001년말 기준으로 외국자본으로 세워진 기업은 1만1천5백개에 이른다.


1997년말 4천4백19개, 98년말 5천1백개에서 두배로 껑충 뛴 것이다.


경제전문잡지 포천이 선정한 5백대 기업중 1백70여개가 한국에 들어와 있다.


이 기간 전자산업에서는 수입다변화정책 철폐로 일본산에 대한 수입 규제가 풀림에 따라 JVC코리아 올림푸스코리아 도시바코리아 등 일본 기업의 한국 법인이 잇따라 설립됐다.


대부분 불법이나 편법으로 유통되는 제품을 사온 국내 소비자들이 제대로 애프터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됐다.


98년 6월부터는 외국인들이 국내 부동산을 보유할 수 있게돼 미국 휴렛팩커드,독일 보험회사 알리안츠가 여의도에,미국 프루덴셜은 대치동에 사옥을 마련했다.


망 사장이 지적한 것처럼 소비자들의 인식도 급전환했다.


이전까지 외국 기업이 한국에 진출하거나 시장 점유율이 높아지면 "시장 잠식", "국부 유출"로 묘사됐지만 이제는 소비자들도 외국기업들이 들어와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제품 가격이 떨어지고 서비스 수준이 향상되는 순효과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유통 부분이다.


외국계 대형할인점이 등장한 후 슈퍼마켓과 백화점의 마진율은 95년 17.8%와 24.2%에서 98년 13.6%와 21.7%로 낮아졌다.


매장이 대형화해 쇼핑 환경이 개선되고 가격 할인 경쟁이 시작돼 소비자가 그만큼 혜택을 보게 됐다.


주한외국기업들은 이제 우리 경제와 함께 성장하고 있다.


산업자원부는 지난해 6월말까지 한국이 달성한 무역수지 흑자 2백38억달러중 20.1%에 해당되는 48억달러가 외국기업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집계한다.


대표적인 예로 2001년 무역의 날에 휴대폰을 생산하는 노키아의 한국 생산법인인 노키아TMC가 금탑산업훈장을, 한국소니전자가 은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이들은 한국휴렛팩커드 한국바스프 모토로라코리아와 함께 한해에 1조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는 외국기업이다.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터를 잡은 외국기업들은 이제 전세계로 기술을 제공하고 수출까지 하기 위한 연구개발센터(R&D)를 한국에 짓기 시작했다.


독일 화학회사 머크는 TFT-LCD용 액정을 개발.생산하는 연구센터를 경기도 평택에,세계 20위권 반도체 메이커인 미국 페어차일드는 패키지 분야 R&D센터를 경기도 부천에 짓는다.


독일 종합 기계회사 지멘스는 차세대 초음파 의료기기, 자동화기기와 항공기엔진기업 미국 하니웰은 자동화기기를 한국에서 개발해 전세계에 공급키로 했다.


이명우 소니코리아 사장은 "나를 포함한 소니코리아 임직원의 99%는 한국인이며 우리의 사업 목적은 본사에서 개발된 제품을 적시에 도입해 국내 소비자들에게 보다 싼 가격과 좋은 서비스 혜택을 주는 것"이라며 "우리는 외국기업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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