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중국에 다녀 왔다. 북경의 가이드는 자기 소개를 하면서 "성이 윤씨이니 미스터윤 하든가 윤따꺼(따꺼는 아저씨)라고 부르면 된다"고 말했다. 3박4일동안 누구도 미스터윤이 아닌 윤따꺼 혹은 윤O씨를 찾았다. 곤명의 가이드는 여성으로 분명히 이름을 밝혔는데도 일행중 몇은 미스최라고 불렀다. "미스터김"은 사라졌는데 "미스김"은 남아있는 현실의 일단을 보여준 셈이다. 여직원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중 하나가 "미스O"라는 호칭이라는 건 알려진 사실이다. KT 민영화 이후 사내 직원에게 물었더니 여직원은 "미스""양""여사",남직원은 "어이" "야"에 대해 거부감이 심했다는 결과도 있다. 호칭은 같은 것이라도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뉴앙스가 다르거니와 "여사" 역시 마찬가지다. 신문의 유명인사 프로필 끝에 붙는 "김00여사와 1남1녀"의 여사는 분명 높임말인 모양이지만 직장에서 멀쩡한 이름이나 직함 대신 "O여사"로 부르는 건 예우가 아닌 수가 많다. 아줌마도 마찬가지다. 가까운 사람이 "아줌마"하면 정겹지만 백화점 등 유통업체 직원이 "아줌마" 하면 소홀히 대하는 듯 느껴지기 쉽다. 대부분의 주부가 강북에선 아줌마, 강남에선 사모님으로 통한다고도 한다. 실제 강북에서 강남으로 이사한 주부가 슬리퍼를 신고 아무 옷이나 입고 나가도 여기저기서 사모님으로 불리자 "얼떨떨했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는 얘기도 있다. "미스O" "O여사"에 대한 여성들의 거부반응에 대해 "뭘 그런 걸 갖고" 라는 남성들도 있지만 호칭은 결코 "그까짓 것"이 아니다. 호칭은 은연중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와 마음가짐에 영향을 미친다. 장관을 지내고 돌아온 국회의원 대다수가 계속 의원보다 장관으로 불리길 원한다는 것도 호칭이 지닌 그같은 속성 때문일 것이다. 스위스 로잔시는 최근 모든 공문서에서 여성의 호칭을 '마드모아젤'과 '마담'으로 구분하지 않고 마담으로 통일했다고 하거니와 미국 AP통신은 2000년 2월부터 기사에서 성별 호칭을 쓰지 않는다. 여성의 경우 기 미혼의 구분없이 Ms.로 통일했던 데서 더 나아가 남성처럼 처음 언급할 때만 이름과 성을 함께 표기하고 두번째부터는 성만 쓰는 것이다. 여성임을 표시하는 건 부부나 암매를 함께 다룰 때에 한한다. 나 또한 기사나 칼럼에서 그녀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남녀 모두 '그'라는 대명사로 쓴다. 여성들이 원하는 건 특별대우가 아니다. 그저 남성과 똑같이 이름이나 직함으로 불러주고 동등한 기회를 제공해주고 같은 잣대로 평가해주기를 바란다. 차별이란 늘 미묘한 형태로 존재한다. 호칭 역시 부르는 사람이 별다른 의미를 갖지 않았다고 해도 듣는 사람이 언짢고 싫으면 잘못된 것이다. 호칭에 관한한 마음에도 없는 듯한 "사장님 사모님" 식의 무조건적인 인플레도,무의식이나 관행을 앞세운 은근한 하대도 옳지 않다는 생각이다. 남녀 구분없이 나이나 직책에 맞는 적절한 호칭을 사용하는 것이야말로 자유롭고 활력있는 조직과 사회를 만드는 지름길이라고 믿는다.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