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내년부터 해마다 1천명의 이공계대학 졸업자를 장학생으로 뽑아 해외유학시킬 계획이다. 하지만 전국 97개 공과대로 이뤄진 '전국공과대 학장협의회'와 73개 자연대로 구성된 '전국자연대 학장협의회'는 관련 부처에 건의문을 보내 "정부의 국비유학 프로그램을 전면 재검토해 달라"고 촉구했다. 한국경제신문 보도에 의하면 대체로 업계는 환영이고,학계는 반대라고 한다. 내 개인 의견으로는 국비유학생 계획은 잘못이다. 정부까지 나서서 이공계 해외유학을 돕다가는,정작 살려가야 할 국내의 이공계 고등교육은 망가질 것이 뻔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 돈은 국내의 이공계 수준을 높이는데 돌려 쓰는 편이 좋겠다. 정부계획이 잘못이라는 점은,민간의 두가지 유학생 장학사업만 봐도 분명해 보인다. 올해 처음 시작된 이 두가지 사업은 '관정 이종환 교육재단'과 '삼성 이건희 장학재단'의 유학생 선발이다. 앞의 경우는 1백명을 8월말 이미 선발해 놓았고,뒤의 경우는 지금 선발이 진행중인데 역시 1백명을 뽑는다. 두 재단은 앞으로 해마다 그 규모를 늘려가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이 두가지 새 계획만으로도 내년에는 2백명이 새로 해외유학을 가게 됐고,그 다음해에는 3백명,4백명으로 매년 혜택 받는 유학생이 늘어날 전망이다. 물론 이 둘 말고도 유학생을 위한 장학사업은 여러 가지 더 있는 듯하다. 또 민간부문에서는 앞으로도 비슷한 장학 사업이 계속 나올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가 해외유학생을 정식으로 보내기 시작한 것은 1948년부터였다. 물론 그 전에는 그럴 경황이 없어 통계도 없는 듯하다. 또 초기의 해외유학이란 국비장학생이 아니라,그저 외국 가서 공부할 것을 허락한 숫자를 기록해 남긴 것 뿐이다. 기록을 보면,1948∼1950년 유학생은 3백3명(남 2백23,여 80)이었고,그 가운데 2백84명이 미국에 갔다. 말이 외국유학이지,90% 이상이 미국으로 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후 유학생은 날로 늘고 나라도 다변화해 1999년 말 현재 유학생수는 15만명이 넘는다. 또 해방 직후 10년 동안은 90% 이상이 미국 유학이었지만,지금은 유학생이 가장 많이 가는 나라의 순서가 캐나다 미국 일본 호주 중국 독일 이탈리아 영국 뉴질랜드로 돼 있다(1999년 통계). 그런데 미국국제교육연구소(IIE)의 통계를 보면,한국은 미국에 가장 많은 유학생을 보내는 국가의 네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2000년 말 현재 미국의 외국유학생은 모두 51만4천7백23명이었는데,그 가운데 중국(5만4천4백46명)이 가장 많고,일본과 인도가 2,3위,그리고 한국이 4만5천6백85명으로 4위다. 이를 인구비례로 따지면 한국의 미국유학생이 압도적으로 많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 유학생은 1883년 미국에 가서 반년 정도 공부한 유길준(兪吉濬·1856∼1914)을 든다. 제대로 된 유학으로는 역시 미국에 가서 최초의 학사 학위를 받은 변수(邊燧·1861∼1892)를 꼽는다. 그후 일제시대에는 35년 간 겨우 수백명이 미국유학을 갔지만,그들 대부분은 해방 후 귀국하지 못하고 말았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1948년부터 유학정책은 '자연 7,인문 3'의 비율을 내세웠지만,그 방향도 잘 지켜지지는 않았다. 해방 후 미국으로 몰려간 수많은 한국유학생 역시 상당수가 귀국하지 못하고 말았다. 귀국해서 할 일이 없었던 것이 큰 원인이었다. 60년대 후반에서야 국내 과학기술이 궤도에 오르면서 일부 유학생이 귀국해 공헌을 한 셈이다. 앞으로도 미국 유학은 장려할 수밖에 없다. 세계에서 가장 앞선 과학기술 선진국이 미국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한국의 청년들이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떠날 것은 분명하고,이를 민간부문이 적극 돕는 것도 이치에 맞는다. 그러나 정부는 한국이라는 '나라'를 위한 봉사가 우선이다. 장기적인 세계화를 위해 국가이익을 저버릴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이미 여러 가지 변칙 유학이 판치고 있어서 미국으로 흘러드는 청소년이 너무나 많은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정부까지 나서서 미국유학을 부추길 단계가 아니다. 더구나 그것이 자라나고 있는 이공계의 싹을 자를 수도 있는 데 말이다. parkstar@unite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