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WALL STREET JOURNAL 본사 독점전재 ] 지난 18일 은행들로부터 주식을 사들이겠다고 발표한 일본은행(BOJ)의 결정은 그야말로 절망적 행동에 다름 아니다. 지속적이고도 견고하게 독립성을 다져온 BOJ가 개입주의자(interventionist)로 바뀐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하야미 마사루 BOJ 총재는 일단 은행의 위험을 국유화하려는 일본 재무성의 압력에 굴복하고 말았다. 그는 이같은 선택이 없었다면 일본 은행시스템이 붕괴될 수 있다며 어느 정도 안도감을 느끼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결정이 과연 일본 정부가 구조적 개혁에 나설 만한 시간을 벌어준 것인지, 아니면 개혁을 회피하려는 노력에 일조함으로써 사태를 더 복잡하게 몰고간 것인지 여부는 조만간 알 수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가 자신의 행동을 어떻게 생각하든 그의 선택은 재앙(disaster)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이달 말로 회계연도의 반을 마감하는 일본 은행들은 조만간 대차대조표를 공개해야 한다. 어떤 조사기관은 일본 은행들의 총 주식가치가 3천2백60억달러에 달한다고 주장했지만 BOJ는 2천70억달러에 불과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닛케이평균주가가 지난 20일 9천6백69엔으로 1980년대 최고치의 4분의1 수준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하야미 총재의 발언 덕분에 주가가 일시 반등세를 보였지만,그것도 '하루'에 그쳤다. 올 2월초 닛케이평균주가가 9천4백20엔까지 급락하자 일본은 위기감에 휩싸였다. 일본 정부는 공매도를 금지하고 각종 연기금들에 매수에 나설 것을 종용,한달후에는 간신히 1만1천엔선을 회복시켰다. 하지만 이번에 당시 사용했던 방법들을 다시 쓰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BOJ는 주식을 사기 위해 보유하고 있는 채권을 시장에 팔아야 하지만 이것은 중앙은행의 역할에서 벗어난 것이다. '주식회사 일본'이 잘못한 일을 감추기 위해 중앙은행이 나서 비자금을 마련하는 듯한 모습이다. BOJ는 지금 최종 대부자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최종 조작자(fudger)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BOJ가 얼마나 많은 주식을 사줄지도 정해지지 않았지만 이 점 역시 중요하지 않다. 중앙은행이 직접 주식을 매수,일본 은행들은 망하지 않을 것이란 암묵적 신호를 보낸다는 점이 바로 핵심이다. 이는 곧 외국인이 투자한 신세이 은행을 제외한 모든 대형 은행들이 거대 부실기업의 도산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식회사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타이타닉호처럼 서서히 침몰하는 것보다는 망해가는 은행을 국유화하는 것이 좀 더 나은 대안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주주와 경영자들은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은행에 구제조치를 실시하는 것은 정부의 의무다. 만약 금융시스템이 붕괴될 위기에 처한다면 정부는 필요한 수단과 방법을 모두 동원해야 한다. 또 그 이후 어떤 혼란이 발생할 것인지에 대한 설명도 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정부몫이지 중앙은행의 일은 아니다. 정리=정대인 기자 bigman@hankyung.com -------------------------------------------------------------- ◇이 글은 칼럼니스트 휴고 리스톨이 23일자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AWSJ)에 기고한 'Japan's Fudger of Last Resort'를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