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사는 국가기술자격증 가운데 최고로 꼽힌다. 지난 63년 기술사법이 제정돼 이듬해 67명의 기술사가 처음으로 배출됐다. 이들은 굵직굵직한 국책사업과 외자도입을 통한 건설사업에 참여, 사업 타당성 검토 등의 작업을 수행했다. 기술사의 승인 없이는 사업 진행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기술사가 맡는 역할이 중요했던 만큼 당시엔 기술사 시험에 합격하면 청와대로 가서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자격증을 받았다. 기술사들은 60,70년대 경제성장에 단단히 한몫을 하면서 산업현장을 지키는 최고의 엔지니어로 인정을 받았다. 80년대를 거쳐 92년까지 기술사는 '기술사 의무고용제'를 통해 최고수준의 대우를 보장 받았다. 건설업체 등이 의무적으로 기술사를 고용해야 사업을 할 수 있게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준 것이다. 그런 기술사들이 92년에 위기를 맞았다. 산업현장의 기술인력이 크게 모자란다는 이유를 앞세워 정부가 '특급 기술자 제도'를 전격 시행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 제도는 일정한 학력과 경력만 갖추면 시험을 거치지 않고 자동적으로 자격을 인정해 주는 것이다. 엄격한 시험을 거쳐 어렵게 자격증을 딴 기술사만이 할 수 있었던 업무를 특급 기술자들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그동안 희소가치를 인정받아온 기술사들이 갑작스럽게 경쟁체제로 내몰리게 됐다. 치열한 경쟁을 겪으면서 기술사의 위상도 크게 흔들렸다. 한 중견 기술사는 "과거엔 건설 관련 기술사 자격증을 가지고 취업하면 한 회사에서 안정적으로 오랫동안 근무하는게 일반적이었는데 최근엔 연봉 차이가 조금만 나도 이리저리 건설사를 옮겨다니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기술사 자격증에 도전하는 응시생의 연령이 젊어진 것도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다. 예전엔 30대 후반에서 40대가 주류를 이루었다. 그만큼 응시자격이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엔 대부분 응시자들이 30대 초반으로 젊어졌으며 20대 후반의 응시생까지도 등장하고 있다. 기술사 시험위원으로 활동중인 한 공대 교수는 "기술사의 위상이 과거에 비해 추락하면서 아파트 현장 한두 곳만을 거친 젊은 사람들까지 도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기술사회 관계자는 "기술사가 되려면 대학을 졸업하고도 수년간 현장에서 경험을 쌓아야 하고 필기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1천 시간(하루 3시간씩 1년간 하는 분량)이상을 공부해야 할 정도로 힘이 든다"며 "하지만 어렵게 자격증을 따도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지난 92년 6천여명에 머물렀던 건설 관련 기술사가 현재는 1만4천여명에 이르렀다"며 "부족한 현장기술인력을 공급하기 위해 도입된 특급 기술자 제도가 그 목적을 달성했으므로 이제 이 제도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뿐만 아니다. 기술사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기술사 활용방안도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기술사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기술 자격증 제도를 개혁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