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자들은 원자 분자 등 기본적인 구조에 대해서 연구해 왔고 생명과학자들은 원자 분자 등이 유기적으로 구성된 인간 나비 등을 탐구해 왔습니다.하지만 기본 물질과 유기체 사이에 있는 단백질,DNA 등은 아직도 베일에 싸여있습니다." 고등과학원(원장 김정욱) 초청으로 최근 우리나라에 온 98년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로버트 러플린 교수(52·미국 스탠퍼드대 물리학과)는 "요즘 전통적인 물리학과 생명과학의 중간영역인 생물물리학(Biophysics) 연구에 온힘을 쏟고있다"며 "나노기술이 생물물리학의 과제들을 풀어나갈 열쇠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서울 홍릉에 자리잡은 고등과학원에서 러플린 교수를 만나봤다. 그는 24일 고등과학원 국제회의실에서 '양자상 전이로서의 블랙홀 생성'이란 주제로 특별강연을 했다. -요즘 어떤 분야를 주로 연구하고 있습니까. "원자와 분자처럼 생명이 없는 물체들이 어떻게 스스로 유기적인 결합과정을 거쳐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는지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작은 것들로 이뤄져 있으며 그것들이 모여 큰 것을 구성한다. 유기체가 형성되는 과정을 규명하기 위해선 단백질 등 나노 크기의 물질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 -나노 크기의 물질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계산하는 것이 왜 어렵습니까. "물리학자들은 주로 계산을 통해 연구를 하는데 물체들이 커지면 계산하기 어려워진다. 그런 복잡한 것들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계산도 하고 관찰도 해야 한다. 하지만 단백질같은 중간 크기의 물체는 빛의 파장과 크기가 비슷하기 때문에 관찰하기 어렵다. 나노기술이 중요해지는 이유다." -물리학자로서 생명과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특별한 계기는. "나같은 이론물리학자는 바퀴벌레에 비유할 수 있다. 실험이 많이 이뤄지는 곳이면 어느 곳이나 따라간다. 그런 가운데 남들이 찾지 못하는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 생명과학에서는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기 때문에 관심을 갖고 있다. 나의 노벨상 수상의 계기도 실험적인 발견에서부터 시작됐다. 과학자들 옆에는 유능한 실험가가 있어야 한다." -노벨상 수상의 계기가 된 '분수양자홀 효과'란 무엇입니까. "분수양자홀 효과는 새로운 양자유체에 관한 이론이다. 양자유체란 강한 자기장과 극저온(섭씨 영하 2백73도 부근)에서 전자들이 액체처럼 운동하면서 전기저항이 분수값을 갖는 상태다. 노벨상 공동수상자인 슈퇴르머와 추이는 반도체에 수직으로 강한 자기장을 걸면 전기저항이 3분의 1과 같은 분수값을 갖는다는 것을 처음 발견했고 나는 그것을 이론적으로 규명했다." -분수양자홀 이론이 전자제품 소형화에 기여하고 있다고들 하는데. "이 이론은 전자제품 제작과 직접 관련이 없다. 컴퓨터가 아주 작아지기 전까지는 이를 공학적으로 응용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아마 반도체 메모리의 집적도 향상과 관련된 '무어의 법칙'이 적용되지 못할 때까지 기다려야만 할 것이다. 나는 공학도들이 연구결과를 갖고 무엇을 할지 예측할 수 없다." -기초과학이 실제로 응용되지 못한다면 기초과학이 존립할 필요가 있는가. "진리를 발견하는 수단으로서 가치가 있다. 순수과학에서는 발견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는 대신 진리를 추구한다. 결과를 얻으면 곧 발표하고 발표한 것에 대해 모든 과학자들이 검증하는 절차를 거친다. 하지만 기술의 사업적인 응용을 염두에 두고 있는 기업에서는 이것이 불가능하다. 발견이 특정인의 소유이므로 과학적인 방법으로 진위를 조사할 수 없다." -한국에서도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가르쳐 주는 것을 열심히 배우기만 하는 학생이 있다고 해서 과학이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인내를 가지고 새로운 것을 자꾸 시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경제 발전과 더불어 인권과 자유가 신장되는 것도 과학발전에 중요한 밑거름이 될것이다."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어떤 내용들을 발표합니까. "아인슈타인의 중력이론이 어느 정도 틀린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의 강연을 통해 과학자들에게 새로운 종류의 천문학적 실험을 제안하려고 한다." 글=송대섭 기자 dss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