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 정치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하지만 교육만큼 정치적으로 악용되거나 오염되기 쉬운 부문도 없다. 교육의 정치화,엄밀히는 정치적 도구화의 폐해는 심각하다. 그렇기에 헌법에 명문의 규정을 두어서까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된다고 한 것이다. 한편 교육내용면에서 정치적 조작을 시도하는 일보다 더 빈번하게 기도되고,또 그에 못지않게 위험한 경우가 있다. 교육문제와 그 해결을 위한 개혁을 공약함으로써 교육문제를 정치적으로 도구화하는 것이 그것이다. 예컨대 김대중정권은 역대 정부 가운데 가장 야심찬 교육개혁 공약을 내걸고 과감한 개혁을 시도했다가 가장 큰 손해를 본 사례에 해당한다. 교사와 학생 등 교육당사자들을 좌절시키고,유치원부터 시작되는 무한경쟁으로 몰아간 폐해를 가져온 것이 개혁의 결과였다. 단기간에 업적을 보여주기 위해 성급하고 독선적으로 추진한 정치도구화된 교육개혁이 성공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산증거다. 정치인들이 교육개혁을 공약으로 내걸어 민심을 사려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자신이 집권하면 '획기적이고 근본적으로''일거에'교육을 개혁할 수 있다고 자처하거나,교육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해 여론을 몰아가려는 정치지도자라는 사람들의 행태는 교육내용의 정치적 조작 못지않게 폐해가 크다. 과거 전두환정권은 입시과열을 해결한다는 명목으로 고교평준화 과외금지 졸업정원제와 정원 대폭 증원 등의 개혁을 단행했지만,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더욱 악화시켰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교육문제들은 각 문제의 특성과 사회적 맥락,실행가능한 처방,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할 정치적 시간과 자원을 종합적 실천적으로 고려하지 않고서는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나마 근본문제들은 단일정권의 임기 안에서는 해결할 수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스웨덴 핀란드 등 서구의 경험처럼 수년간 실험을 거쳐 시행해야 할 과제도 적지않은데,어떻게 일거에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것인가. 교육의 기회균등이나 사교육비 문제,입시과열 등 교육개혁의 현안을 해결하는 문제 못지않게 교육성과의 수준과 질을 유지,개선하는 문제에도 좀더 많은 정책적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 교육제도가 얼마나 우수한 인력을 배출하는가 하는 문제는,인적 자원을 밑천으로 발전해온 우리의 사활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 교육의 황폐함을 한탄하면서 유럽으로 눈을 돌릴 때,독일에서는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대상의 고교생 학업 수행능력 평가(PISA Studie)에서 최하위권을 기록한 교육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모색하면서 핀란드 등 모범적인 교육개혁 사례와 함께 수위권을 지킨 한국교육의 시스템,특히 성과주의와 책임성원칙에 눈을 돌리고 있다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 물론 분야별로 우리 학생들의 성적이나 자율적 학습성취도에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교육개혁을 한답시고 독일에서 비판 받는 '포용교육(Kuschelp dagogik)'방식을 섣불리 도입해 그나마 우리가 다른 나라에 비교우위를 보이는 요소들을 손상시키지 말아야 한다. 독일의 경우 학생들의 자율적 학습동기 유발과 교사 및 학교의 명확한 책임성 및 성과주의를 실천하고 있는 핀란드의 교육제도를 벤치마킹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교육 개혁은 누가 차기정권을 차지하든 맞닥뜨려야 할 과제다. 문제의 어려움은 누구든 자기 정권의 임기 내에 가시적 성과를 얻을 수 없으리라는 데 있다. 그런데도 정치적 타산에 눈이 어두워 서두르거나 독선으로 일관하다 보면 더 큰 폐해를 남기고 끝날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지금 대선 가도로 달려가는 데 여념이 없는 대선후보들이 교육 개혁의 당위와 추진방법,일정에 관해 범정파적 합의를 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누구도 정권획득 여부와 관계없이,정치적 이해관계에서 벗어나,마음을 비우고 교육개혁을 추진해 그 성과는 다음 정권 이후에나 평가받겠다는 대승적 자세가 필요하다. 대선주자들 간에 교육개혁에 관한 범정파적 대합의가 이루어진다면,그나마 미래에의 작은 희망을 추스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것이다. joonh@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