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들아! 나처럼 살지마라"고 지금 많은 아버지들은 말하고 있다. 성공적으로 살아오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자식 앞에서조차도 '고개숙인 남자'가 되어버린 가장의 장탄식처럼 들린다. 아버지야말로 가정과 사회의 가장 중요한 버팀목인데도 삶의 무게에 짓눌려 언제나 외롭게 살아가기에 이 말이 더욱 가슴에 와 닿는지 모른다. 전통적으로 아버지는 집안의 절대 지배자였고 식구들의 정신을 지배했다. 두려움과 존경의 대상이면서 한편으로는 기대고 의지하고 싶은 종교와도 같았다. "아들을 알지 못할 때에는 그 아버지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할 정도로 아버지는 본(本)을 보이는 이상형으로 여겨졌다. 이런 아버지의 존재가 IMF를 겪으면서 깊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구조조정의 와중에 어느날 갑자기 일자리를 잃으면서 어깨가 축 처진 모습으로 가족 앞에 나타난 것이다. 부양능력을 상실했다는 무력감에 밤잠을 설쳐야 했고,식구들 앞에서는 미안한 마음에 큰 소리 한번 제대로 칠 수 없었다. 더 이상 아랫목을 차지하는 예전의 가장이 아니었다. 언제 한번 속 시원히 울어보지도 못하는 아버지의 오죽한 심정은 김정현의 소설 '아버지'와 조창인의 '가시고기'가 나오면서 전국에 '아버지 신드롬'을 불러 일으키기까지 했다. 요즘 '아버지는 누구인가'라는 작자미상의 글이 인터넷과 입소문을 통해 급속히 번져가고 있다. 오늘을 살아가는 아버지의 실상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는 이 글은 소설 못지 않은 화제를 뿌리고 있기도 하다. "아버지란 기분이 좋을 때 헛기침을 하고,겁이 날 때 너털 웃음을 웃는 사람이다." "아버지는 머리가 셋 달린 용(龍)과 싸우러 나간다. 그것은 피로와 끝없는 일과 직장 상사에게서 받는 스트레스다." "아들 딸들은 아버지의 수입이 적은 것이나 지위가 높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이 있지만,아버지는 그런 마음에 속으로만 운다." "아버지! 뒷동산의 바위같은 이름이다. 시골마을의 느티나무 같은 크나 큰 이름이다."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 글을 읽으면서 숙연해진다고 하니,그 부정(父情)은 깊기만 한 모양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