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도 흥망성쇠의 사이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내부 분열 때문이든 외부 환경 변화 때문이든 기업은 언제나 기회와 위기의 양날칼 위에서 곡예를 하고 있다. 기회를 잡지 못하면 위기에 빠진다. 살아남는 것이든 더 성장하는 것이든 분명한 지표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종업원들이 어떤 일에 승부를 걸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그것이 비전이요, 중장기 목표다. 한마디로 추려지면 경영 키워드(key word)다.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들의 키워드는 그 자체 한국 재계의 미래상이다. 세계 정상의 기업, 알찬 회사, 신뢰받는 업체가 되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 공통적인 것은 명확한 비전으로 핵심역량을 극대화하며 기회가 올 때 잡아챌 수 있는 힘있고 탄력있는 조직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불확실성에 대비한 시스템 구축 급변하는 경영환경 때문에 기업들은 투자 결정을 내리기가 더 어려워졌다. 무엇이 주도산업이 될지, 어떤 비즈니스모델이 성공적일지 누구도 단정짓지 못한다. 삼성과 한화는 이런 불확실성에 대한 대비를 가장 중시하고 있다. 삼성이 붙들고 있는 키워드는 이건희 회장이 직접 지시한 '준비 경영'이다. 이것은 '잘 나가는' 지금에 안주해서는 언제든 추격당할 수 있다는 위기감의 표현에 다름 아니다. 실제 이 회장은 "중국 홍콩 싱가포르 등과 경쟁하기 위해 항상 준비해야 하고 특히 빠른 속도로 따라오는 중국의 추격을 피하기 위해 대책을 강구하기 위한 것"(9월12일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서)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한화의 경우는 '시나리오(Scenario) 경영'을 키워드로 잡고 있다. 발생 가능한 불확실성에 대해 여러가지 대응책을 마련해 놓으면 위기가 새로운 사업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적극적 사고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 핵심역량 집중을 통한 도약 공격적인 목표를 세우고 수년내 정상급 기업으로 도약하는 것을 키워드로 내건 기업들로는 LG 현대자동차 롯데 등을 들 수 있다. LG는 구본무 회장이 앞장서 '일등 LG'를 경영화두로 내걸었다. 내실경영으로 구조조정을 마친 성과를 바탕으로 이제는 한단계 더 큰 목표를 향해 달려가야 한다는 의지가 집약돼 있다. 현대자동차 그룹의 키워드인 'GT-5(글로벌 톱 5)'도 같은 맥락이다. 오는 2010년까지 연 생산능력을 5백만대 수준까지 올리고 품질을 높여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겠다는 계획. 롯데의 경우도 '핵심역량의 집중'을 통한 신규 사업 기회 모색이라는 비전을 전사원들이 공유하고 있다. 지난 4월 경제연구소를 마련한 것은 새로운 성장엔진을 마련하기 위한 중장기적 포석이다. 가치.수익 중심의 내실 다지기 알짜 기업 만들기에 집중하고 있는 기업들이 숫자상으론 가장 많다. 주안점은 고객 가치 수익 등 분야로 다소 차이가 있다. SK가 가장 중시하는 것은 고객이다. 에너지와 정보통신이라는 사업 양대축 모두에 결정적인 변수가 되는 건 고객이라는 판단에서다. '고객 가치 극대화를 위한 미래 경쟁력 확보'가 키워드. 한진과 두산은 수익력 극대화에 주안을 두고 있다. 한진은 유가나 환율 등 외부 변수에 영향이 큰 만큼 어떤 환경 아래서도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든다는 목표를 세웠다. 두산의 경우는 2006년 영업이익 규모로 국내 정상에 진입한다는 비전을 만들었다. 이밖에 시장과 주주, 종업원들로부터 신뢰를 얻기 위해 가치 높이기에 집중하는 기업으론 포스코와 금호 효성 코오롱 등을 들 수 있다. '가치 경영'(포스코) '기업가치 극대화'(금호) '프로경영'(효성) '디지털 플러스(+)'(코오롱) 등이 이들이 내건 슬로건들이다. 권영설 경영전문기자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