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출신 기술직 고급 공무원들은 승진하기가 쉽지 않다. 중앙 행정기관에 근무하는 기술직 공무원 수는 5급에서 1급으로 올라갈수록 크게 줄어들고 있다. 기술고시 출신 현직 차관급은 단 한명도 없다. 승진하는데 걸리는 기간도 행정직에 비해 훨씬 길다. 행정직에 비해 보통 2~3년 이상 더 걸린다는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 뿐만 아니다. 보직에서도 찬밥대접을 받기가 일쑤다. 중앙행정부처의 과장급 이상 자리중 기술직이 확실히 차지할 수 있는 자리는 전체의 9.3%에 불과하다. 이로 인해 기술분야 정책결정과정에서 부작용을 일으키는 사례도 자주 일어나고 있다. ◇ 보직에서 차별받는다 =행정직은 다양한 보직을 맡을 수 있는데 비해 기술직은 임용 때부터 전기 기계 화공 토목 건축 등 분야가 제한된다. 중앙행정기관 국.과장급중 행정직만 임명될 수 있는 자리는 전체의 57.8%인 비해 기술직은 9.3%에 불과하다. 나머지 32.9%는 행정, 기술직이 임용될 수 있는 복수직이지만 행정직이 절반 이상인 57.8%를 차지하고 있다. 재정경제부 기획예산처 국무조정실 등에는 3급 이상의 경우 기술직 정원조차 없다. 부처 내에서도 행정직은 종합적인 기획.인사부서 등에 주로 배치되는데 비해 기술직은 사업부서에 주로 배치된다. 국정감사 때마다 기술직 공무원들이 현장에서 장사진을 치고 대기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감사는 주로 사업위주로 다뤄지기 때문이다. 중앙부처의 한 기술직 공무원은 "2회 이상의 가벼운 주의에도 징계를 받도록 규정돼 있어 기술직 공무원들이 업무를 추진하는데 더욱더 힘이 든다"고 털어놨다. ◇ 외부평가를 잘 받기가 어렵다 =행정직에 비해 정책·기획부서에서 근무할 수 있는 기회가 적기 때문에 거시적인 시각을 기르기가 쉽지 않다. 이로 인해 경쟁력과 능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듣고 있는 것이다. 정부 부처가 기술직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교육에 인색한 데다 기획 인사 감사 등 부서를 행정직이 장악하고 있는 것이 그 원인으로 꼽힌다. 정보통신부의 한 기술직 공무원은 "숫적으로 열세인 기술직에 대해 그나마 월급을 차등화하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지적했다. ◇ 기술직들이 떠난다 =공직을 떠나는 이공계 출신 공무원들도 적지 않다. 기술고시 13회 출신인 한 공무원은 "동기 74명 가운데 앞길이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공직을 떠난 사람이 줄잡아 25∼30명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국방부의 기술직 간부급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천안의 한 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A 교수는 "승진 등 인사문제에서 홀대받는 것이 공직을 떠나게 된 주된 이유였다"고 털어놨다. ◇ 기술행정이 흔들린다 =기술직 홀대로 정부정책의 방향이 어긋나는 사례도 자주 일어나고 있다. 지난해 8월 미국 연방항공청(FAA)이 한국의 항공안전등급을 2등급으로 하향 조정했던 것도 이같은 사례라는게 전문가들을 분석이다. 건교부는 94년말부터 이때까지 기술직이 아닌 일반 행정직 출신 7명을 항공국장에 보임한 것이다. 정부부처간 정책조율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과학기술부 관계자는 "연구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감사원 감사관의 지적으로 국가연구개발의 방향이 틀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부처 공무원들에게 협조를 요청할 경우 행정고시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업무가 매끄럽게 진행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는게 기술고시 출신 공무원들의 설명이다. 산자부의 이공계 출신 간부는 "보고서 작성보다 윗사람을 이해시키는게 더 어렵다"며 "심도있는 내용을 다루지 못해 정책 자체가 단순해지는 경향이 있다"고 꼬집었다. 특별취재팀 strong-kore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