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제대로 된 국가모양을 갖추고 경제적으로 번영의 계기를 마련한 것은 금광개발 덕이었다. 캘리포니아에서 금광이 발견되자 개척민들은 애팔라치아 산맥을 넘고 대평원을 지나 로키산맥 서쪽의 태평양연안까지 달려갔다. 이어 정착민들을 실어나르기 위한 철도가 깔리고 그들의 신변안전을 위해 군대가 파견되었다. 서부이주는 '클레만타인' 노래에 나오는 포티-나이너(Forty-niner),즉 1849년 절정을 이뤄 1890년대까지 이어졌는데 이 기간에 미국의 기틀이 다져졌다. '지구 정상회의'가 열리고 있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Johannesburg)도 금광개발지였다. 요하네스버그라는 이름은 당시 정부가 감독관으로 파견한 요하네스 유베르트의 이름과 시(市)를 뜻하는 버그를 붙여 만들어졌다. 1886년 호주의 조지 해리슨이 금강석을 발견하면서 각광받기 시작한 이 도시는 상공업 중심지로 떠올라 이제는 남아공 최대 도시가 됐으며 GDP의 35%를 창출할 정도이다. 케이프 타운이 입법수도,프레토리아가 행정수도라면 요하네스버그는 국가를 지탱하는 버팀목이자 젖줄 구실을 하는 경제수도인 셈이다. 요하네스버그는 해발 1천7백50?에 위치한 고원 내륙도시인데도 관광자원을 개발해 매년 수백만명의 여행객을 끌어들이고 있는 점이 눈길을 끈다. 대표적인 관광지로 골드 리프시티가 꼽히는데 폐광(Crown Mines)을 개조해 갱구 식당 양조장 등 요하네스버그의 초기모습을 재현해 놓아 관광객의 인기가 높다. 이 광산은 만델라 전 대통령이 젊은 시절 야간 경비원으로 근무한 곳이기도 하다. 산과 호수 등 천혜의 자연경관 역시 관광객을 끄는 요인이기도 하다. '요하네스버그 비엔날레'라는 아프리카대륙의 유일한 흑인종합예술전도 여기에서 열리고 있다. 그렇다고 요하네스버그가 문제 없는 것은 아니다. 공업화로 인한 환경파괴와 극심한 빈부격차로 비판받고 있는데 이는 이번 회의의 의제이기도 하다. 가장 가난한 마을인 알렉산드리아가 지구정상회의장 바로 옆이라는 사실이 아이러니컬하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