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 몇군데에 전화로 확인했더니 실제와 차이가 납니다. 수치가 잘못된 것 같으니 기사화하지 말아 주십시오." 서울지방식약청은 '약값이 약국에 따라 7.5배나 차이 난다'는 지난 23일 일부 언론보도에 대해 "조사때 약사들이 약품 단위를 감안하지 않고 약값을 적어 넣어 생긴 일"이라고 해명했다. 예컨대 A사 ㄱ제품은 50㎎과 1백㎎이 있는데 어느 약국은 50㎎ 짜리를 써 넣었고 다른 곳은 1백㎎ 짜리를 적어 혼선이 생겼다는 얘기다. 그는 "재확인 결과 판매가 차이는 최고 7.5배가 아니라 2.5배였다"고 말했다. 해명인즉슨 단순 해프닝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해프닝으로 넘겨버리기엔 황당한 부분이 많다. "설문서에 약품 단위까지 명기해서 설문을 했는데도 약사들이 의약품 단위를 혼동했다"(서울식약청 관계자)는 설명은 설득력이 부족한 정도가 아니라 '유치한 책임 떠넘기기'란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번 설문을 조사·정리한 것은 약국이 아니라 서울식약청이다. 조사 결과가 엉터리라면 조사한 측에서 책임을 지는 게 상식이다. 그럼에도 약국들의 엉터리 답변으로 이유를 돌리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만약 책임이 약국에 있다면 약국에 대한 행정처분이나 설문서 보완 등의 대응책이 나올 법도 한데 두루뭉술 그냥 넘어가는 모양이다. 대충대충 넘어가기는 이 뿐만 아니다. '가격차이가 7.5배에 달한다'는 상식밖의 조사결과가 나왔음에도 방치한 것 또한 납득하기 힘들다. 약품 판매가는 제약사 공급가에 적정 마진을 붙인 것인 만큼 유통마진이 아무리 높아도 이렇게 큰 차이가 날 수 없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 수 있다. 약국이 스스로 판매가를 결정하는 '판매자 가격표시제'는 가격인하를 목적으로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 43개 품목을 대상으로 지난 99년 도입됐다. 값을 비교 조사해 소비자 선택의 폭을 넓혀 약값을 낮추겠다는 포석이었다. 제도가 정착되려면 신뢰성 있는 가격조사와 전파가 필요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해프닝이 '의약품 당국에 대한 불신→판매자 가격표시제 표류→국민 약값 부담 증가'란 악순환으로 이어질까 걱정스럽다. 박기호 사회부 기자 kh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