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 전자전기공학부 최평 교수는 최근 수도권의 모 대기업 연구소를 찾아갔다. 산학 공동연구 프로젝트를 제안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담당자의 반응은 차갑기 그지 없었다. "가까운 수도권 지역에도 대학이 많은 데 왜 하필 지방대와 하느냐"는 반문만 듣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최 교수는 "경북대 공대가 지방 국립 공과대학중에서는 최고라고 자부하지만 서울로 올라가면 여지없이 찬밥신세"라며 불만을 털어놨다. 70~80년대 특성화 대학으로 성공,"서울공대 못가면 경북대 전자과에 가겠다"는 게 지방학생들의 일반적인 인식이 될 정도로 주목받았던 경북대 공대. 그러나 지방대라는 한계로 인해 '최고'라는 명성도 빛이 바래고 있다. 입학생들의 수준은 해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고 취업률도 예전 같지 않다. 정부 지원은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고 마지막으로 의지할 곳으로 여겼던 기업들로부터도 반응이 신통치 않다. 최근에도 각종 대학 평가지표에서 지방공대로는 유일하게 10위권 안에 들지만 내부 연구현실을 들여다보면 불안하기 짝이없다. 예산은 60억원.국립 서울대 공과대학 1년 예산의 10분의 1수준에 불과하다. 교수 1인당 연구비(2002년)는 2천4백만원 정도로 포항공대(2억7천만원)의 15%에도 못 미친다. 서울의 상위권 대학(5천만원대)과 비교해도 절반 수준이다. 교수 1인당 학생수는 더욱 형편없다. 경북대 공대에서 가장 여건이 좋은 전자전기컴퓨터공학부의 경우 교수 70명에 학생은 무려 2천5백82명에 달한다(대학원 포함).교수 1인당 학생수는 36.8명.서울공대 28.5명,KAIST 18명,포항공대의 12.9명에 비해 턱없는 수준이다. 그나마 이같은 수치마저도 다른 지방공대에서는 '배부른 소리'로 들린다. 열악한 연구여건 속에서도 옛 명성을 유지하려는 교수들의 몸부림은 눈물겨울 정도다. 외국에서 유치한 우수 유학생을 붙잡기 위해 지도교수는 사비를 털어 월 40만원씩 생활비를 주고 있다. 연구지원비는 수도권 명문대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지만 국제저명학술지 논문발표수(1인당 연평균 2편)에서는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교수들의 열의도 이제는 조금씩 약해지고 있다. "당장 문제는 학생들이 떠나고 있다"(공대 한 교수)는 것이다. 학부 입학생들의 수준이 예전보다 떨어진 것은 물론 재학생들의 휴학 등 학업중단율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전자전기컴퓨터공학부의 경우 학부생 중 3분의 1이 군입대나 취업준비를 이유로 휴학 중이다. 대학원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교수들은 "정부의 두뇌한국(BK)21사업 이후 지방대가 더욱 위축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BK21 지원을 받은 우수 대학원의 경우 진학자 50%를 타학교 출신으로 채우도록 정부가 의무화하면서 지방대 우수학생들이 수도권 대학원으로 진학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나마 사정이 나은 경북대 공대조차도 졸업자의 대학원 진학률이 20∼30%대로 떨어진 데다 우수학생들의 상당수가 KAIST나 서울대 공대 등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공과대 K교수는 "BK21이 시작되기 전만 하더라도 학생들과 똘똘 뭉치면 서울공대 못지 않은 수준을 만들 수 있다는 꿈이 있었다"며 "그러나 BK21사업 이후 우수학생들을 빼앗기면서 이같은 꿈은 기대하기 어려워졌다"고 털어놓았다. 학생 연구비 사기 등 3가지가 없다는 '3무(無) 현상'으로 몸살을 앓고 있기는 지방공대의 대표격인 경북대 공대도 마찬가지인 셈이다. 이동호 공과대학장은 "70,80년대에는 정부가 지방대 육성을 위해 특성화 대학을 선정해 집중 지원하는 등 비전과 희망을 제시했다"며 "그러나 이제는 정부의 무대책에다 수도권 집중현상,대학 서열화까지 겹쳐 지방대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따라서 "산업계에서 필요한 연구인력의 절반 이상을 배출해내는 지방 공대가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부의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특별취재팀 strong-kore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