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벤처기업 인증요건을 한층 강화할 모양이다. 중기청이 입법예고한 '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시행령' 개정안에 따르면 올해 11월부터는 벤처기업으로 지정받으려면 매년 연구개발비가 5천만원을 넘어야 하고 동시에 연간 매출액의 5% 이상이어야 하며, 벤처캐피털로부터 투자를 받은 기업은 인증을 신청하기 전 최소한 6개월 이상 투자액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지난 몇년간 무분별하게 양산된 벤처기업의 옥석을 가리는 일은 벤처업계는 물론이고 우리경제의 앞날을 위해서도 시급한 일이다. 벤처기업과 관련된 각종 비리가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된 뒤끝이라 더욱 그렇다. 그러나 벤처기업 인증요건을 강화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냉정히 말하면 현재 나타나고 있는 갖가지 벤처기업 문제는 정부에서 '너는 벤처다 너는 아니다'는 식으로 판정을 내리는데서 비롯된다고도 볼 수 있다. 본질적으로 모험적이어야 할 벤처기업의 특성을 감안하면 정부인증, 곧 지원에 의존하려는 성향을 부추기는 벤처정책은 문제가 있다. 벤처기업이 시장에서 자생력을 갖도록 하는 것이 선결과제라면 인증요건 강화조치가 과연 어느정도 의미있는 일인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벤처기업 육성의 중요성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고부가가치화, 그리고 그 밑바탕이 되는 고도기술 개발과 직결돼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벤처인증을 받은 기업수가 1만개를 넘은 현실을 감안하면 더이상의 시장혼란을 막기 위해 벤처인증 요건강화와 같은 조치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벤처정책은 정부에 의해서가 아니라 시장에 의해 주도되도록 정책방향을 바꿔 나가야 한다. 문제는 관계당국이 아직도 정부주도 벤처육성책의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이는 산자부 정통부 과기부, 심지어 문광부까지 나서서 벤처기업 관할문제를 놓고 영역다툼을 벌이는가 하면 벤처투자펀드 조성에 경쟁적으로 정책자금을 투입하는 잘못된 행태를 시정하지 않고 있는 것만 봐도 명백하다. 이런 실정이니 대표적 벤처기업인 메디슨이 문어발식 투자로 도산하는가 하면 전체 벤처기업의 60% 이상이 수출이나 해외진출 실적이 전혀 없는 등 벤처거품이 커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 모른다. 정부는 이번 조치를 계기로 부실 벤처기업들을 대대적으로 정리한 뒤 벤처 활성화를 시장자율에 맡기는 '발상의 전환'을 해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