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의 요즘 모습을 보면 '자본론'의 저자 카를 마르크스가 계급투쟁을 거론하며 예언한 '자본주의의 위기'를 감지할 수 있다. 최근의 악화되고 있는 경제지표와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의 비리로 점철된 모습에서 이를 엿보게 된다. 마르크스가 유토피아 건설을 내세우며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 사회주의 국가는 대부분 부패한 전제국가로 전락했다. 하지만 자본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의 통찰은 아직도 빛을 발하고 있다. 일본과 함께 자본주의의 양대 지주격인 미국에서는 증시거품이 꺼진 뒤 계급간 보이지 않는 알력이 점차 커지고 있다. 최근의 계급간 알력은 마르크스가 해석했던 계급투쟁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마르크스는 노동자와 자본가간의 갈등에 초점을 맞췄다. 이에 비해 미국과 일본 사회내 계급간 알력은 중산층 내부에서 확대되는 양상이다. 하지만 지난 20년동안 미국사회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각할 정도로 악화됐음을 감안할 때 마르크스의 예언은 나름대로 적중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81년까지만 해도 미국 총자산 중 소득 상위 1%에 속하는 사람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25%에 불과했다. 그러나 90년대 후반 들어 이 비율은 38%까지 높아졌다. 19세기 소수의 자본가들을 중심으로 발생했던 자본과 노동력, 그리고 상품의 집중화 현상도 21세기 들어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게다가 자본주의의 최대위기로 불렸던 20년대 말 경제대공황과 요즘의 미 증시를 비교하면 쏙 빼닮았다. 대공황이 절정에 달했던 29년부터 3년 동안 다우존스 지수는 89% 폭락했다. 90년대 들어 줄곧 천정부지로 치솟던 뉴욕증시는 2000년 3월을 고점으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최근 3년간 26% 곤두박질 쳤다. 20년대에도 애널리스트들은 미국 경제에 대한 확신을 바탕으로 강한 매수 추천을 했었다. 역시 2000년 3월 이전 애널리스트들은 다우존스 지수가 36,000은 쉽게 넘어설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다우존스 지수는 이달 현재 9,000선도 돌파하지 못한 채 약세장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미국의 저축률은 80년대 중반 국민순생산(NNP)대비 9∼12%를 기록했으나 현재는 4% 이하로 떨어졌고,실업률은 지난 3년 동안 2%포인트 이상 올랐다. 마르크스식 자본주의 위기론을 논하기에는 시기가 너무 이르다는 반박이 나올 수도 있다. 이는 미국 증시가 최근 들어 회복조짐을 보이고 있고 대공황 때와는 달리 인플레이션의 위험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는 점 때문이다. 일본과 달리 은행권의 악성부채가 적다는 점과 10년전에 비해 주식을 보유한 가구수가 2배 이상 늘었다는 점도 위기론 반대론자들이 내놓는 근거다. 그러나 엔론이나 월드컴 타이코 글로벌크로싱 등 일부 스캔들에 연루된 경영자들이 보여준 행태는 자본주의의 위기를 진단할 수 있는 주요 단초가 될 수 있다. 정리=오광진 기자 kjoh@hankyung.com ------------------------------------------------------------------------------ ◇이 글은 니얼 퍼거슨 영국 옥스퍼드대 정치경제학 교수가 파이낸셜타임스 최신호에 기고한 'Full Marx'를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