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공대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포항공대를 설립한 박태준 전 포스코회장과 초대총장 고 김호길 박사다. 박 전 회장이 '한국의 칼텍'을 꿈꾸며 포항공대 프로젝트를 밀어붙인 '아버지'라면 김 총장은 포항공대를 탄생시키고 키운 '어머니'에 비유할수 있다. 김 총장은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대학에서 정교수에 오른 저명한 물리학자다. 서울대물리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버밍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30년 가까이 외국에서 살면서 시민권을 한 번도 요청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한국으로 돌아가 조국을 위해 일하겠다는 신념때문이었다. 박 전 회장이 초대총장감을 물색하고 있던 지난 1985년 김 총장은 당시 럭키금성이 세운 연암공업전문대학의 초대학장을 맡고 있었다. 세계적인 명문 공과대학을 만들고 싶어하던 그의 꿈은 그러나 정부가 연암공전의 공대 인가를 차일피일 미루면서 흔들리고 있었다. 이 소식을 들은 포스코측은 김 학장이 초대총장으로 적격이라고 판단, 삼고초려 끝에 영입하는데 성공했다. 김 총장은 교수 확보를 위해 한 달새 미국 15개 대학과 영국 4개 대학을 비롯 22개대학을 방문하고 4백50명의 교수를 만나면서 무려 열다섯 차례나 설명회를 열었다. 박 전 회장은 학교조직 개설학과 교수숫자 교수수준 등을 김 총장이 결정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줬다. 지난 94년 4월 한국은 아까운 물리학자를 잃었고 포항공대는 '어머니'를 여의었다. 제철학원 공동 체육대회에서 발야구를 하며 달리던 김 총장은 중심을 잃고 벽에 부딪쳐 뇌출혈로 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