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문제는 부부관계와 똑같다. 노사간 다툼은 칼로 물베기여서 스스로 해결하도록 내버려두는 게 상책이다. 정부의 개입은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지난 93년 봄 대형 노사분규가 전국을 휩쓸고 있을 때 당시 이인제 노동부 장관이 입버릇처럼 강조하던 말이다. 강한 개혁정책으로 경영계로부터 거센 반발에 부딪치긴 했지만 이 장관의 기본 인식은 온정적 노사관을 바탕에 깔고 있었다. 회사측도 노조원들의 웬만한 불법은 없었던 일로 덮어주며 사태의 해결점을 찾았다. 과거 노사현장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젠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회사측은 근로자들의 불법을 결코 눈감아 주지 않는다. 노조가 불법파업을 벌이면 즉각 법으로 대응한다. 회사 기물을 파손했다간 법원으로부터 노조비나 노조원 임금에 대한 압류통보가 날아든다. 과거에도 회사측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은 있었지만 파업이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취하했다. 근로자가 불법파업으로 임금을 차압당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요즘 '법대로'가 노사관계의 중심에 자리하면서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올 들어 불법파업 등을 강행하다 법원으로부터 가압류된 노조재산은 40여개 사업장에서 1천3백억원에 달한다. 서울 경희의료원노조는 불법파업 대가로 조합비 3억원과 노조간부 13명에 대한 임금 2억6천만원을 가압류 당한 상태다. 충남 아산시 세원테크노조원 18명도 지난 6월 업무방해혐의로 9억8천만원을 가압류 당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가압류된 임금이나 재산을 갚지 않을 경우 입사할 때 신원보증을 서준 지인에게까지 책임이 돌아간다. 옛날처럼 막무가내식으로 노동운동을 펼쳤다가는 굶어죽기 꼭 알맞다. 법을 어기는 노동운동은 설 땅이 없다. 민주노총의 손낙구 교육선전실장은 "몇년전만 해도 사용자의 손배소는 근로자들을 길들이기 위한 엄포용이었으나 요즘은 다르다"며 "사용자들이 무서워졌다"고 했다. 인정사정 봐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노조도 법의 테두리 속에서 활동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