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기업가가 되려면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들어가라.' 장흥순 터보테크 사장, 이민화 메디슨 전 회장, 안영경 핸디소프트사장, 허진호 아이월드네트워킹 사장, 오상수 새롬기술 사장, 김정주 넥슨 공동대표, 임병동 인젠 사장, 김광태 퓨쳐시스템 사장, 박한오 바이오니아 사장, 노승권 유진사이언스 사장…. 내로라하는 이들 벤처기업가가 바로 KAIST 출신이다. KAIST는 벤처사관학교로 통한다. 그동안 배출해낸 벤처기업가는 4백여명에 이른다. 창업 1년이 채안된 실험실 수준의 벤처기업까지 포함시키면 그 수는 훨씬 늘어난다. KAIST 출신들은 80년대말 한국에서 벤처 붐을 일으켰다. 선진 공학교육을 받은 졸업생들 상당수가 벤처업계로 진출, 정보기술(IT) 산업을 일구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KAIST 출신 벤처기업인 1세대로는 장흥순 사장(전기공학 박사.89년 졸업), 이민화 전 회장(전기공학 박사.86년 졸업), 안영경 사장(전산 석사.91년 졸업), 정철 휴먼컴퓨터 사장(전산 박사.89년 졸업), 허진호 사장(전산 박사.90년 졸업), 이정근 디지털드림스튜디오 사장(재료공학 석사.89년 졸업), 하정률 코어세스 사장(전기전자 석사.88년 졸업) 등이 꼽힌다. 장흥순 사장은 지난 2000년부터 벤처기업협회장을 맡아 업계를 대변하고 있다. 그는 85년 KAIST 전산과 대학원에 입학, 석사학위를 받고 88년 박사과정을 밟던 중 터보테크를 창업했다. "KAIST 시절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학풍이 창업의 밑거름이 됐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2세대로는 오상수 사장(전산 석사.90년 졸업), 김정주 공동대표(전산 석사.93년 졸업), 네오위즈 나성균 전 대표(산업경영 석사.96년 졸업), 박종만 아담소프트 사장(생물공학 석사.92년 졸업) 등을 꼽을 수 있다. 보안분야에서도 KAIST 출신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최고 수준의 전산시설에서 학부때부터 마음껏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 덕분이다. 임병동 사장(산업공학박사.97년 졸업), 해커스랩의 김창범 사장(전산 박사.86학번),김광태 사장(전산 석사.87년 졸업), A3시큐리티컨설팅의 김휘강 사장(산업공학 석사.94학번)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김창범 사장과 김휘강 사장은 KAIST 해킹 동아리인 '유니콘'과 '쿠스' 출신이다. 학창시절부터 해킹에 관심을 가져온게 결국 창업 원동력이 됐다. 바이오분야에서도 주역을 맡고 있다. 박한오 사장(화학 박사.92년 졸업), 노승권 사장(생물공학 석사.85년 졸업), 차기철 바이오스페이스 사장(기계공학 석사.82년 졸업), 한정호 바이오메드 사장(기계공학 석사.88년 졸업) 등이 활약하고 있다. KAIST가 벤처 산실이 된 데는 실용주의 학풍이 한몫을 했다. 학교 실험실에서 연구에 몰두하다 사업성을 발견하고 곧바로 벤처를 창업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다른 대학보다 우수한 시설과 장비, 학교측의 창업지원 시스템도 빼놓을 수 없는 요인중 하나다. KAIST 이광형 교수(전산학과)는 "학부생때부터 '이론'보다는 '산물'을 중시하는 분위기에 젖어들도록 유도한다"며 "벤처창업이 본격화된 80년대나 지금이나 실용주의에 바탕을 둔 벤처정신은 KAIST를 지탱하는 힘"이라고 말했다. 국내 어느 대학보다 많은 창업 동아리가 활동중인 것도 바로 이같은 배경 때문이다. KAIST 학생이 이루고 싶은 꿈 가운데 하나는 벤처기업가다. 전산 동아리 '스팍스'의 김진국 회장(21)은 "선배들이 사회에 진출해 활약하는 모습은 큰 힘이 된다"며 "언젠가는 창업을 하겠다"고 말했다. KAIST 출신들이 한국을 대표하는 벤처기업인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일부로부터 기술로는 무장됐지만 기업가에게 요구되는 경영자질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실제로 KAIST 출신 벤처기업가들 사이에서 경영권 분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임병동 사장은 "이는 벤처산업 발전 초기때 일어나는 현상"이라며 "산업공학이나 경영과학 전공자들이 경영에 합류하면서 이같은 문제점이 해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별취재팀 strong-kore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