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식생활은 오랫동안 주식인 밥 위주로 이뤄져 왔다. 때문에 반찬이 없어도 간장이나 고추장만 있으면 밥 한 그릇을 거뜬히 해치울 수 있고 그럴 형편조차 안되면 냉수에 말아먹어도 된다. 밥(飯)의 명칭도 먹는 사람과 놓이는 곳에 따라 수라(왕) 진지(웃어른) 메(제사상) 등 다양하다. 밥이 중시된 만큼 밥짓는 솜씨나 밥맛에 대한 기록도 많다. 청대(淸代)의 "반유십이합설(飯有十二合說)"엔 "조선사람들은 밥짓기를 잘한다. 밥알에 윤기가 있고 부드러우며 향긋하고 기름지다",조선시대 "옹희잡지"엔 "우리나라의 밥짓기는 천하에 이름난 것이다.밥물은 쌀 위로 한손바닥 두께쯤 오르게 붓는다"고 적혀 있다. 실제 왕실에서 수라를 지을 땐 작은 곱돌솥에 참숯을 썼고,일반가정에선 식구마다 다른 식성을 생각해 무쇠솥에 쌀을 앉힐 때 앞쪽은 높이고 뒤쪽은 낮게 해 진밥(낮은쪽) 된밥(높은쪽)을 함께 지었다. 또 임산부가 있으면 가장 좋은 쌀과 미역으로 삼신상(三神床)을 차려 안산(安産)을 빈 다음 밥을 짓고 국을 끌여 산모에게 먹였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에 따라 밥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 "꼭 먹어야 하는 것"에서 "대체 가능한 것"으로 바뀌면서 밥 대신 라면이나 햄버거,피자를 먹는 사람도 크게 늘어났다. 최근엔 레인지에 잠깐 동안 데우기만 하면 되는 즉석밥도 인기라는 소식이다. 제일제당이 97년에 선보인 "햇반"과 농심이 올해 내놓은 "햅쌀밥"등이 모두 잘팔린다는 것이다. 기본쌀밥은 물론 오곡밥 카레밥 짜장밥 미역국밥 육개장국밥 우거지된장국밥 등도 잘나간다고 한다. 즉석밥이 관심을 모으는 건 혼자 사는 사람이 많은 데다 가족이 함께 식사하는 일이 적은 탓이라고 한다. 홀로 지내거나 식구가 제각각 귀가하는 경우 매번 밥을 새로 짓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미리 해두면 맛이 없어지거나 자칫 버리게 되는 만큼 필요할 때 금방 먹을 수 있는 즉석밥을 찾는다는 얘기다. 주5일 근무제 확산으로 레저인구가 늘어나면 즉석밥의 수요는 더욱 커질 것이라고도 말한다.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고 밥까지 사먹느냐'는 지적도 있지만 "보온밥통에서 며칠씩 묵은 밥보다 낫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무선인터넷의 발달이 신유목민 시대를 연다는 세상이다. 정말이지 밥솥밥은 점점 멀어지는 것인가.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