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사 제도'는 1963년 국가경제개발 5개년 사업의 일환으로 기술사법을 제정 공포함으로써 탄생된 제도다. 이 제도는 정규 이공계 4년제 대학졸업 후 7년의 실무경험을 갖추거나,기사자격을 획득한 뒤 4년이 경과하면 시험 응시자격이 주어지는데,그런 응시자의 약 9% 정도만 시험의 문을 통과해 자격을 얻고 있다. 지금까지 배출된 기술사 수는 기계제작 선박설계 품질관리 등 97개 기술자격 종목에서 총 2만5천7백16명이다. 기술사는 고도의 전문지식과 응용능력을 갖고 연구 설계 분석 조사 등에 관한 기술자문과 기술지도를 하는 기술계 최고봉이다. 지난 4월18일 발표한 제66회 시험의 경우,합격자가 응시자의 3% 미만인 종목도 5개나 된다. 사법시험 8%,행정고시 8% 등 다른 자격임용시험의 합격률과 비교할 때 기술사 되기가 얼마나 어려운 가를 이해할 것이다. 그러나 각고의 노력 끝에 자격을 획득한 기술사들은 그들 역량에 걸맞은 대접을 받지 못해 낙담하고 있다. 기술사 중 실업자도 상당수 있으며,취업을 해도 박봉에 허덕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기술자의 '꽃'인 기술사로서의 자존심은 찾을 길 없이,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초라한 모습이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가? 첫째,기술사의 전문지식을 활용하는 제도가 미흡하다. 법에 명시된 기술사 우대조항의 실천이 안되고 있는 것이다. 국가기술자격법 제10조와 기술사법 제5조에 '정부는 기술자격취득자를 우대하고 기술사 활용시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기술사의 67%를 차지하는 건설업 관련 분야는 기술사 없이도 건설업 등록을 할 수 있게 완화했다. 건설업 면허요건에 토목공사업 건축공사업 토목건축공사업 등 건설업 등록을 위한 기술기준에도 기술사 없이 중급기술자만 보유하면 되게 돼 있다. 예전엔 반드시 기술사가 있어야 등록이 가능했던 것을 기업의 압력으로 완화시킨 것이다. 기술사 한 명 없이 건설업을 영위할 수 있다는 것은 기술을 무시하는 행위로,성수대교·삼풍백화점 붕괴와 같은 참변을 예방할 아무런 조치가 안돼 있다는 증거다. 둘째,국가자격제도를 무색케 하는 인정기술사(認定技術士)의 양산이다. 정부는 95년 건설경기 활황으로 인해 건설기술자에 대한 수요가 확대돼 인력수급상의 불균형이 초래되고,WTO 시장 개방에 따른 해외기술자의 국내 건설분야 활용을 위해 건설기술관리법을 개정했다. 이 법에서 기술사 외에 박사 3년,석사 9년,학사학위 취득 12년 이상이 경과하거나 실무경력 15년과 18년 이상인 전문대와 고졸자에게 기술사와 동등한 특급기술자로 인정해 기술사에 버금가는 '인정기술사'로 대우를 하도록 명시했다. 학력 경력만을 갖고 정식 기술사와 동등하게 인정해주는 그런 제도는 명백히 모순이다. 법대를 졸업하고 12년이 경과했다고 해서 변호사로 인정해 주는 법이 가능한가? 95년 이후 '인정기술사'숫자는 6만4천여명으로 정식 기술사의 3배에 육박한다. 건축 전기 등 관련 분야 경력서류 몇장이면 기술사나 다름없는 자격을 부여하는 제도는 잘못이다. 고졸자가 18년 이상 병원에서 일했다고 의사 자격증을 주는 것에 다름아니다. 셋째,기술사의 선발,활용과 관리를 담당하는 정부 부서가 여러 곳에 나누어져 있다는 점이다. 기술사 선발은 노동부의 산업인력공단에서,활용은 관련 정부 부처에서,관리는 과학기술부가 하고 있다. 이렇게 분산된 기술사 관련 정책은 어떤 부서도 결정적인 책임을 피해 나갈 수 있으므로 혼돈과 무질서가 반복되고 있다. 기술사는 기술자의 장인(匠人)으로 기술계의 최고자격이다. 이런 기술사들이 사회에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다면 우수한 청소년들이 이공계를 기피하는 한가지 요인이 될 수 있다. 기술자들의 미래인 기술사의 모습을 이렇게 초라하게 만들어 놓고 어떻게 청소년들에게 기술자의 길을 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기술경쟁력이 뒤진다면 어떻게 국가경쟁력을 키울 수 있을 것이며,선진국의 반열에 낄 수 있을 것인가? parksh@plaza.snu.ac.kr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