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의 '레임덕(lame duck)'현상이 극에 달해 있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이었을까. 지난 7일자 파이낸셜타임스는 '김대중 대통령은 레임덕이 아니라 아예 죽은 오리(dead duck)'라고 보도했다. '한국 정치인들은 이제 청소부보다도 못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여론조사를 인용한 이 신문은 '한국 정치는 문명사회의 토론을 외면한 채 뒷골목 깡패들식 주먹싸움을 벌이고 있다'고 힐난했다. 한심한 정치에 가위 눌리는 것은 경제다. 수마(水魔)가 적지 않은 농민들에게 좌절을 안겨준 가운데 원화 가치 상승은 수출기업을 위협하고 있을 뿐 아니라,갈곳 잃은 부동(浮動)자금은 강남 아파트투기와 사치향락 여행,그리고 사행소비로 내닫고 있다. 그러나 어두움 속에서도 희망의 구석은 있게 마련이다. 서울은행 매각문제가 그중 하나인지 모른다. 하나은행으로 넘어갈 것으로 보이던 서울은행은 미국계 론스타가 '값을 더 쳐주겠다'고 수정 제의해 오는 바람에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할지 모르게 됐다. 이미 던져진 주사위를 다시 굴리는 게 타당한지는 더 따져봐야 할 일이다. 하지만 대우자동차 하이닉스 현대투신 등 지루하기 이를 데 없는 협상을 지켜봐야 했던 우리에게 하나은행과 론스타가 벌이는 '진검(眞劍)승부'는 흥미를 끄는 색다른 경험이 아닐 수 없다. 당초 하나은행이 제시한 인수가격을 환산하면 서울은행의 주당가격은 7천원이 넘는다. 이는 외환은행의 현 시가 5천4백90원이나,조흥은행 5천원보다도 월등히 높은 것이다. '물건만 좋으면' 살 사람은 얼마든지 있고,가격 또한 자연히 올라간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서울은행이 '쓸만한' 물건이라는 것은 S&P도 인정하는 일이다. S&P는 서울은행에 그리 나쁘지 않은 평점 BB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BB는 조흥은행 우리은행이 받은 평가와 같은 수준일 뿐 아니라,BB-를 받은 외환은행보다는 한 단계 높다. 완전감자(減資)를 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던 서울은행이 채 2년도 안돼 화려하게 부활한 것이다. 서울은행이 '행복한'상황을 만들어 낸 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돈 되는 곳에만 빌려준다'는 '은행다운(?)'원칙을 고수해 왔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다른 은행들도 마찬가지였지만 서울은행은 2000년 19.5%에 불과했던 가계대출비중을 지난 6월 말 현재 52.6%로 무려 2.7배나 늘렸다. 반면 2000년 46.8%에 이르던 대기업 대출은 27.4%로 줄였다. '가계대출만큼 돈 되는 곳도 없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2000년 12월 19.75%에 이르던 부실채권 또한 지난 6월 말 현재 1.97%로 현저히 줄여 놓았다. 언제 부실로 뒤바뀔지 모르는 '우발(contingent)부실'도 거의 없다. 예를 든다면 산업은행 우리은행 외환은행 등이 아직도 하이닉스에 발목 잡혀 있지만,서울은행은 손털고 나온지 오래다. 결국 하나은행이나 론스타 모두 서울은행을 사들이면 큰 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서울은행에 대한 투자도 결국 큰 돈벌이 중 하나인 셈이다. 이런 상황이니 하나은행이나 론스타 모두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은 뻔하다. 그러나 서울은행 가격에도 '경합 프리미엄'이라는 거품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나은행이나 론스타 둘 중 어느 하나가 '경매(auction)장'에서 빠져나가 버리면 경합거품은 쉽게 빠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입찰과정에 불공정 시비가 끼여들 여지를 만드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라는 차원에서 정부와 매각주체인 예금보험공사가 잊지 말아야 할 점은 바로 이 대목이다. 양봉진 한경닷컴 사장 bjy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