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마음의 소리요 사상(思想)의 옷이다. 말 한마디가 남 앞에 자기의 초상을 그려 놓는 셈이다. 사람이 말을 하지 않는 것을 두고 탓할 것은 못되지만 일단 말을 한다면 반드시 이치있는 말을 해야 하며,말은 함부로 하기가 쉽기 때문에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게 논어의 가르침이다. '조폭두목 같다' '나이 값을 해라' '인생이 불쌍하다' '시장잡배' '빨치산' 'xxx의 앞잡이' '조작극' '작태' '폭거' 등등이 국회에서 오간 말이다. 정당의 정책경쟁이 실종되다 보니 막말이 오갈 수밖에 없다. 걸핏하면 '대통령 후보가 사과하라' '후보를 사퇴하라'는 소리도 흔히 들린다. 어쨌든 상대를 흠집내야 할 절박한 사정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상대를 깎아내리는 네거티브 작전은 위험수위를 넘었고 국민들의 식상함을 불러일으킨다. 만나면 싸움이고 입씨름이다. 경쟁회사의 제품이 나쁘다고 비방하는 광고를 내는 기업은 공정거래법에 걸린다. 정치판은 그런 제동장치가 없다. 아예 공정거래를 하지 않으니까 그런 제재를 할 수 없다는 것일까. 중국과의 마늘협상을 둘러싸고 정책결정 라인에 있었던 관계부처 장관들과 청와대의 고위 당국자 사이에도 말이 엇갈린다. 당시 농림부장관(김성훈)은 "관계장관회의가 세 차례 열렸으나 긴급수입제한조치 연장불가는 논의조차 안 했다"고 주장했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협상합의문을 농림부장관이 직접 서명해 놓고 모른다면 말이 안 된다"고 했다.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기호)은 그런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논의를 하고도 안 했다는 것인지 안 하고도 했다는 것인지,알고도 모른다고 하는 것인지 진짜 몰랐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시골동네 우물가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도 이렇게 앞뒤가 뒤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당시 통상교섭본부장으로 마늘협상을 지휘한 한덕수 청와대 경제수석과 서규룡 농림차관에게 책임을 물어 이들을 사퇴시켰다. 책임자를 제대로 가려낸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책임자를 문책한다고 사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마늘협상 과정과 결과 모두 만족스럽지 않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그 결과를 국민에게 알리지 않았고 관계당국자들 누군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1972년 6월 미국 닉슨 대통령의 재선을 획책한 비밀공작반이 워싱턴의 워터게이트 빌딩에 있는 민주당 사무실에 침입해서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돼 체포됐다. 당초 닉슨 대통령은 도청사건과 백악관과의 관계를 부인했으나 대통령 보좌관 등이 관계하고 있었음이 밝혀졌고 대통령 자신도 무마공작에 나섰던 사실이 폭로돼 결국 대통령직을 사임하게됐다. 이게 워터게이트 사건이고 여기서 따온 말이 '게이트'다. 당시 미국여론은 도청사실 그 자체보다도 그걸 감추려고 거짓말 한 것을 용서하지 않았다. 걸리버 여행기를 쓴 풍자작가 조너선 스위프트(1667~1745)는 '정치적 거짓말'이라는 글에서 "거짓말은 권력획득 및 유지의 수단뿐 아니라 그것을 잃었을 때 그 앙갚음의 수단으로 사용하게 됐다. 정치적 거짓말쟁이는 다른 거짓말쟁이와 달리 짧은 기억력을 가져야 한다. 상대에 따라 시시때때로 자신의 의견을 번복하기도 하고 서로 모순되는 두 가지 의견을 말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쓰고 있다. 노태우 대통령이 후보시절,당선되면 "중간평가를 받겠다"고 했다가 얼마나 큰 고역을 치렀는가. 장상 총리지명자의 퇴장도 그의 능력이 검증된 결과가 아니라 앞뒤가 안 맞는 말 바꾸기 때문이었다. 몇 십억원을 받고 "대가성은 없다"는 것도 가장 거슬리는 거짓말이다. 때와 장소에 따라 생각과 주장은 바뀔 수 있다. 그럴 경우 그 이유는 설명돼야 한다. 슬쩍 넘어가려는 것은 술수요 거짓말이다. 거짓말과 도둑질은 이웃사촌이다. 강원룡 목사는 "과장된 말은 인플레와 같고,약속을 실천하지 못하는 말은 부도수표와 같고,의식적인 거짓말은 위조지폐와 같다. 군인과 정치인의 말은 보증수표와 같이 정확해야 한다"('5분간의 사색')고 했다. 부도수표 위조지폐가 돌아다니는 세상을 바로 잡으려면 그걸 만들고 사용하는 사람을 철저히 응징해야 한다. 적당히 눈감아줄 일이 아니다. yoodk9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