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노사정위원회의 보고서에 의하면 국민의 78% 이상이 '주5일 근무제' 도입을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칙적으로 우리나라 국민 대다수가 주5일 근무제 도입을 원하는 셈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노조 기업 양측이 원만한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당국은 단독입법을 진행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제도의 도입을 놓고 왜 이렇게 큰 갈등을 빚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모든 이들이 주5일 근무제가 '좋은 제도'가 되기를 희망하지만,현재 상태에서 실제로 그 제도가 도입됐을 때 결과가 과연 어떠할지에 대해서는 상이한 견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시대적 상황과 무관하게 언제나 좋은 '주5일 근무제'란 존재할 수 없고,그것이 처한 상황에 따라 특수한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현재의 상황이 '주5일 근무제'를 어떤 성격으로 규정하고 있는지 검토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 우리의 현재 경제상황을 살펴보자.우선 전통적인 경제성장의 두 기둥인 국내 설비투자와 수출여건의 측면에서 볼 때 그 전망이 밝지 않다. 최근 한국은행 보고서에 의하면 국내 설비투자와 제조업 생산활동이 크게 둔화되고 있다. 수출도 7월 들어 증가했다고 하지만 이는 1·4분기 수출둔화에 따른 일시적 반사효과가 반영된 것이며,주요 수출대상국인 미국 유럽의 경기상황과 미국의 달러 약세정책을 감안할 때 향후 수출전망은 그리 밝지 않아 보인다. 산업부문에 존재하는 이러한 어려움은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에 심각하다. 중소기협중앙회가 내놓은 보고서에는 최근 중소기업인들의 전반적 경영의욕이 크게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목할 만한 것은 그들의 경영의욕을 떨어뜨리는 요인 가운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주5일 근무제'라는 점이다. 중소기업의 경우 대기업과 달리 설비자동화 수준이 낮으며 노동집약적 생산방법에 의존하기 때문에 주5일 근무제의 도입이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주5일 근무제의 도입이 여가시간을 늘려 소비와 산출을 증가시킬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또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그에 따라 생산성도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노동시간 단축이 노동생산성 증대로 이어진다는 논리는 근거가 부족하다. 더욱이 소비와 내수경기에 이미 크게 의존하고 있는 우리 경제구조를 감안할 때 노동생산성 증대가 없는 상황에서 소비를 통한 경기진작은 장기적 경제성장의 관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주5일 근무제 도입을 통한 다른 여러가지 이점,즉 자기계발이나 사회봉사 참여의 기회 증대 등은 도외시한 채 이를 단지 레저와 유흥활동의 기회로만 이해하고 부추기는 일각의 행태 등은 이러한 우려를 더욱 깊게 한다. 게다가 이전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들이 해결되지 못하고 있으며,현재 구조조정이 크게 지연되고 있는 상황에서 주5일 근무제의 무리한 도입은 오히려 우리 경제에 해(害)가 될 수도 있다. 지금은 노동시간이 단축되더라도 고용기회의 확대로 이어지기 어렵다. 이런 여건에서 주5일 근무제가 무리하게 도입될 경우 이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한 실업자 증가 및 비정규직 확대 등의 문제와 함께 사회적 경제적 위화감을 더욱 증폭시킬 수 있다. 따라서 주5일 근무제는 현재 각 기업이 처한 실정을 감안해 노사협의를 통해 자발적이고 점진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또 주5일 근무제가 사회에 바람직한 기능을 할 수 있게 하는 제반 시스템을 미리 준비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이런 것들이 합의되고 준비되지 못한 상황에서 서둘러 주5일 근무를 법제화하려는 정부의 태도는 그것이 선거를 의식한 선심정책이 아닌가 하는 의문도 갖게 한다. 경제문제를 정치적 논리로 풀어서는 안된다. 바람직한 주5일 근무제는 치밀한 계획과 준비를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지,게으른 낙관과 근거 없는 희망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hahyun@base.yonsei.ac.kr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