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huy91@hanmail.net 아줌마 노릇 혹은 주부 노릇이 어려운 까닭은 해야 할 일의 가짓수가 워낙 많아 도무지 품위를 유지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주부가 하는 일 가운데 정식 직종이나 직업인 일들을 일삼아 적어 본 적이 있는데 몇 십 번까지 쓰다 질려서 말아 버렸다. 가사 노동의 부가가치가 제대로 환산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그렇게 나열해보기 전까지는 실감하지 못했다. 내가 그렇게 다재다능한,깊은 인내심을 지닌 인간이었다니. 요즘 주부의 일 한가지를 더 깨달았다. 바로 '킬러'라는 직분이다. 어느 날부터 집에 바퀴벌레가 출현했다. 한밤중에 차를 끓이기 위해 부엌 불을 켰다가 발견한 그것을 바깥에서 우연히 날아든 벌레인 줄 알았다. 하필이면 이런데 와서 죽을 자리를 찾다니 너도 참 안됐다,하며 파리채를 찾아 벌레 있던 자리로 되돌아갔더니 안 보였다. 지레,냉장고 밑쯤으로 들어가 죽겠구나 싶어 잊어버렸는데 이튿날 새벽에 부엌에 나갔다가 질겁을 했다. 화닥닥 흩어지며 구석으로 스며드는 몇 마리의 그것들이 바퀴벌레라는 것을 비로소 알아챈 것이다. 모기나 불개미,쌀벌레 정도야 공생과 살생을 반복하며 당연하게 여기며 살았지만 바퀴벌레는 그 때가 처음이었다. 벌레 보고 비명을 지르며 주변을 뒤집어놓는 일은 소녀 시절에도 해본 적이 없는데 새삼 놀랄 일이 뭔가. 파리채를 찾으러 갈 틈이 없어 급한 김에 싱크대 서랍에서 프라이팬 뒤집개를 꺼내 도망이 늦은 세 마리를 잡았다. 놓친 몇 마리가 분해서 곧장 싱크대를 분해하다시피 했지만 그들도 사태의 심각함을 느꼈는지 꼭꼭 숨어버려 찾지 못했다. 그 날 밤에 다시 발견했다. 그 때부터 전쟁이 시작되었다. 식량과 퇴각로를 막기 위해 뻔질나게 청소를 하고 늘 모면할 궁리만 했던 공동방역에도 빠짐없이 참가하지만 내 집에서 그들의 지하 조직은 아직 건재하다. 가끔 그들이,전세가 역전될 가망이라곤 없는 데도 목숨을 걸고 움직이는 게릴라들 같아 보일 때가 있다. 벌레를 퇴치하는 직업이 텔레비전에 광고될 정도이니 연락해서 한꺼번에 모조리 없애버리면 될 터인데 그렇게 못하는 까닭은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전복을 꿈꾸는 게릴라들에게 매혹되었던 시절이 나한테도 없지 않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