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은행권에도 '3강의 법칙(rule of three)'이 적용될 것인가. 하나은행의 서울은행 인수가 유력해짐에 따라 '3강 진입'을 화두(話頭)로 한 은행들간 생존 경쟁이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하나.서울 합병은행은 총자산 84조원으로 신한은행을 제치고 국민과 우리은행에 이어 국내 3위(자산기준)의 대형 은행으로 부상한다. 은행권이 이른바 '빅3 체제'로 재편되는 것이다. 금융계의 관심은 신한.조흥.외환.한미 등 나머지 주요 은행들의 후속 움직임에 쏠리고 있다. 이들 은행에도 멀지 않아 '합종연횡'을 통한 대형화 움직임이 거세게 일 것이란 전망이다. 그에 맞선 '빅3' 은행들의 수성 전략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 김승유 하나은행장은 6일 "서울은행 인수 이후 자산규모 1∼2위의 선도은행이 되기 위해 추가 합병을 추진하겠다"고 밝혀 4위로 밀릴 위기에 처한 신한은행은 물론 국민과 우리은행까지 긴장시켰다.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은 "국내 금융시장 규모로 볼 때 전국 규모의 은행은 3∼5개가 적정하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라며 은행권에 '합병 바람'을 부추기고 있다. ◆ 은행권 빅3 체제 지난 6월말 현재 하나은행과 서울은행의 자산은 각각 58조원와 26조5천억원. 두 은행이 합치면 자산이 84조5천억원으로 불어난다. 초대형 은행인 국민은행의 1백97조5천억원엔 못미치지만 우리은행의 88조6천억원에 근접한 수준이다. 하나.서울 합병은행의 점포수도 하나은행 3백1개와 서울은행 2백94개를 합쳐 5백95개로 늘어난다. 우리은행(6백89개)에 육박하는 숫자다. 특히 기업금융과 일부 부유층을 대상으로 한 프라이빗 뱅킹(PB)에 강점을 가졌던 하나은행이 서울은행을 인수할 경우 그동안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소매와 카드부문의 약점이 크게 보강된다. 서울은행의 누적결손금에 따른 향후 5년간 3천7백억원에 달하는 법인세 감면 혜택도 합병은행의 수익성을 높여줄 무기로 작용한다. 더욱이 김승유 하나은행장은 서울은행과의 합병 이후 추가로 제일은행 인수에 나설 뜻을 공공연히 내비치고 있다. 제일은행의 법인세 감면 효과가 줄어들면서 주가가 떨어지고 대주주인 뉴브리지가 독자생존보다 매각을 통해 수익을 얻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면 두 은행간 합병 논의가 재개될 수 있을 것으로 금융계는 보고 있다. ◆ 추가 합종연횡 구도 하나은행의 이같은 행보로 가장 다급해진 곳은 신한은행이다. 다른 은행들의 '러브콜'을 거절하고 지주회사를 세운 신한은행은 하나은행이 단숨에 3위권으로 부상함에 따라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이에 따라 신한은행은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한미은행과의 합병 협상에 고삐를 죌 전망이다. 한미은행도 대주주가 수익을 추구하는 투자펀드인 만큼 소규모 은행의 존립이 힘들다고 판단되면 합병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금융계는 보고 있다. 국민과 우리은행의 움직임도 주목된다. 김정태 국민은행은 최근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국내 금융산업은 2∼3개 종합금융그룹으로 재편될 것"이라며 추가 합병에 나설 수 있음을 시사했다. 우리은행 고위 관계자도 최근 사석에서 "하나은행측에 합병을 제의했다"며 의지를 내비쳤다. 은행권 합병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정부가 지분을 갖고 있는 조흥과 외환은행도 매물로 나올 가능성이 있다. 홍석주 조흥은행장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가격 등 조건이 맞으면 언제든지 합병을 추진할 수 있다"며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외환은행도 우선 자회사들을 묶는 지주회사 설립을 추진하되 상황에 따라서 합병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조흥과 외환은행도 이번 은행권 재편에서는 다소 물러나 있지만 언제든지 합병주체로 부상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