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군,정경계열을 지원한 동기가 무엇이지요?" "저는 장래 훌륭한 공무원이 되고자 행정학과에 지원하게 됐습니다." "행정학과를 나와야만 공무원이 되는 게 아니에요.정부에는 경제학과 공과 문과 출신이 다 필요합니다.행자부 같은 데를 가겠다면 모를까." "행정학과에 들어가야 고시준비가 편하다고 하던데요." 수시입학 면접고시 때 태반의 수험생들과 나눈 대화다. 고시(考試)가 오늘날 어떤 교육양태를 유발하는지,그리고 어떤 인물들이 주로 공직을 맡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그림이다. 정보화·국제화 시대를 맞아 우리사회에는 일대 의식혁명이 진행되고 있다고들 한다. 그러나 공직은 오늘날에도 '출세'의 상징이며 만능의 방편이다. 그리고 한국에서 고급관료가 되려면 고시에 패스해야 한다. 우리처럼 공직자 선발제도가 가정 학교 국가사회 전반에 일파만파(一波萬波)의 파장을 불러일으키는 나라는 이 세상에 없다. 당초 고시가 한국 사회에 뿌리를 내린 데에는 나름대로 유리한 풍토가 있었다고 보여진다. 관직이 '국민을 다스리는 일'로 인식되던 시절 수많은 법규를 익히고 적용하는 능력이 곧 유능한 관료의 자질이 됐다. 이런 관료만 필요하다면 공개시험을 통해 기억력 우수한 사람을 골라내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또한 족벌 연고 의리 아부 뇌물이 횡행하는 세태에서는 경쟁시험 이상 정의롭고 투명한 인물등용제도가 없다. 재산과 문벌이 없더라도 한 번 급제하면 일약 입신출세하게 되니 그 평등지향성과 한탕주의도 우리 국민의 정서에 맞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정부는 정부수립 이래 반세기 이상의 기간을 이 제도에 집착했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그 시대적 사회적 존립근거를 따질 시한이 오래 전에 지난 것이다. 먼저 고시가 왜 생겼는지를 보자. 그 뿌리가 되는 과거시험제도는 정보 유통이 막혔던 시대 국가의 인재발굴 요구를 충족하고자 고안된 것이다. 2천여년 전 한무제(漢武帝)는 지방수령에게 수재(秀才) 명망이 있는 자를 추천하게 했다. 그 자질을 알 수 없는 이들을 황제가 시일을 정해 모아 나라경륜의 일을 질문하고(策問),답변을 받아(對策) 평가한 것이 이 제도의 효시이다. 당시로는 국가발전에 혁혁히 이바지한 발명으로서,후에 삼국지의 조조(曹操)같은 유명한 인재들이 이렇게 등용된 것이다. 인터넷을 비롯해 정보공급이 무한대인 오늘날 이 제도는 인물선발 방편으로서의 1차적 존립근거를 잃었다. 그렇지만 한국의 관료들은 지난날 그들이 적격인물로 선발된 길을 따라 내일의 법관,행정관도 한날 한자리에서 고시를 치러 뽑을 것을 고집한다. 정보화와 국제화가 주 명제(命題)가 된 오늘날은 전문성과 적응력이 관료의 필수적 자질이다. 그런데 한국의 관료지망생들은 고시촌에 틀어박혀 오로지 법규 달달 외우기를 생활화해야 한다. 지성과 인격이 형성되는 청년시기 몇년간을 인간사상이나 전문지식을 철저히 외면한 채 옛 제도를 암기하고,틀에 박힌 사고를 하도록 두뇌를 훈련시키는 것이다. 한국의 공공부문은 국가경쟁력을 끌어내리는 요소로 내외에서 노상 지탄받아 왔는데,이렇게 세뇌된 관료들의 속성을 본다면 그 원인을 의심할 여지가 하나도 없다. '청년은 국가의 기운(氣運)'이라고 한다. 그런데 가장 머리가 좋다는 수만명의 한국 청년들은 바늘귀같은 등용문을 뚫고자 황금같은 수년간을 오로지 고시준비에 소진하고 있다. 얼마나 허무한 국가 에너지원의 낭비인가. 실패한 자들에게 남을 것이 좌절 이외에 무엇인가. 그 시간 독서,사색과 각자의 전문분야에 심취하면서도 공직자가 되는 길을 찾을 수 있다면 이들에게나 국가에게나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가. 관료제도의 개혁이 어려운 것은 그 수혜자가 칼자루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높은 자리를 외부인사에게 노상 열어놓는 제도를 좋아할 관료는 없다. 고시제도는 과거에 수차례 시비의 대상이 됐지만 항상 흐지부지 결론지어졌다. 한때는 기업의 신입사원도 이런 식으로 뽑았으나 민간부문은 이제 변했다. 정부도 이제는 민간부문처럼 각급 수준의 공무요원을 다양한 수단과 헤드헌팅시장을 활용해 언제 어디서나 확보하게 하도록 국민이 압력을 주어야 한다. kimyb@ca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