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문제다. 과도하게 많아도 적어도,지나치게 좋아해도 마다해도 문제다. '돈에 대한 사랑이 모든 죄악의 뿌리'라는 말은 만고불변의 진리이지만,그 말을 잘못 압축하면 돈과 죄악을 동일시하는 허구의 도덕론이 나온다. 이것은 농경사회에서는 합리성이 있었겠지만 근대화 이후 사회에는 타당성을 상실한지 오래다. 돈이 무엇인가. 그 형태와 재질이 어떻든 간에 물건의 값을 어림하고,물건 바꾸기를 편하게 하고,오늘에서 내일로 자산 가치를 넘기고 늘리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 돈이다. 이처럼 가치척도,교환의 매개수단,가치저장수단을 고르게 갖춘 게 남한의 돈인 반면,북한의 돈은 가치저장의 기능이 억제될 뿐만 아니라 나머지 두 기능도 제한된 절름발이 돈이다. 경제 상황에 따라서는 남한의 돈도 기능이 제약되는 수가 있다. 물가 오름세가 가파른 인플레이션 상황하에서 화폐나 금융자산을 보유하고 있다가는 자산의 가치를 잠식당한다. 사정이 이러할 때 다른 형태의 자산이 선호된다. 아파트 등 부동산 값이 들먹이거나 때론 치솟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요즘 강남 일대 아파트 값이 강세로 돌아선 것은 많이 풀린 돈이 수익률이 낮은 금융자산을 떠나 실물자산을 찾아 나섰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 반세기 넘어 이같은 자산선택의 게임에서 손해를 본 적이 거의 없었다는 경험 사실이 당위론과 현실론의 틈을 벌린다. 이같은 게임에 낙오하지 않으려 아둥바둥 살아온 것이 모든 가계의 모습이었고,대다수 주부들의 으뜸된 과제였다. 지난주 국회동의를 얻지 못한 공직 후보의 경우는 특이한 주부의 사례를 보여주었다. 시어머니에게 책임을 돌린 본인의 정직성에 의심이 간다는 게 중론이었지만,질문을 던진 의원들 가정 살림도 면죄부를 받기 어려울 것이다. 시장 경제에서 자산선택의 움직임이 경제를 움직이는 원동력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법 테두리 안에 머무르는 한 투기 그 자체가 결코 비난의 대상일 수 없다. 지난 6월말 북한 돈에 변화가 일어났다. 생활물자 배급제를 없애는 대신 임금을 평균 20배로 올려 줄테니 시장에서 조달하라는 조치가 있었다. 북한 대학 교과서를 읽어보면 '화폐는 완전한 사회주의가 실현되기 이전 단계인 상품생산 단계에서만 잠정적으로 쓰이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정책으로도 일정액 이상의 신권 교환을 억제하는 화폐 개혁을 여러 차례 단행하면서 돈을 모아 재산을 늘리는 일을 억제해왔다. 이같은 화폐 수탈에서 벗어나는 길은 외국돈을 모으는 것이다. 악화가 양화를 몰아낸다는 진리는 북한에서도 예외가 아니어서 시중에는 주로 악화(북한 돈)가 나돌지만 주민들이 깊이 간직하는 양화는 외국돈(달러화, 엔화)이다. 그들 말대로 '원쑤' 나라 돈이 존경받는 사회가 북한이다. 금번 조치의 결과는 어떠할까. 기업들이 제품 가격을 스스로 정하고 벌어들인 수입으로 인상된 임금을 지급하라는 취지의 조치는 큰 차질과 파행을 겪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화폐 증발없이 20배 이상 인상된 임금을 지급할 수 있는 기업은 드물 것이고,이것은 폭발적인 수요증대를 초래할 것이다. 기업들이 가격유인(이윤동기)에 따라 생산을 늘리기까지에는 설비 투자와 시간 경과가 소요되기 때문에 금번 조치가 생산증대 효과를 얼마나 거둘 것인가는 미지수다. 이것은 적어도 단기적으로 북한 체제의 고질 문제인 수급 불균형을 더욱 악화시키고 시장 가격의 폭등을 부채질할 것이다. 남한 문제의 근본 해결 방법은 거시적으로 경제 안정 기반을 다지고,실물자산과 금융자산 간의 예상 목표수익률 격차를 줄이는 것이다. 자금출처 세무사찰 등 정부가 빼어 든 비상무기의 칼날은 무디다. 북한은 앞으로도 입으로 교조적 사회주의를 외치겠지만 결국 시장경제에 접근하는 머나먼 길을 계속 걸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남북한의 공통점은 돈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결여된 데 있다. 돈에 대한 내숭떨기와 교조적 거부반응이 벗어나야 할 과제이다. 근대 경제사회의 틀 속에서 돈이 제대로 구실할 수 있어야 발전과 번영이 있다. "돈은 좋은 하인이지만, 나쁜 주인이다."(서양 속담) 맞는 말씀이다. pjkim@ccs.sog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