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3@arirangtv.com 새벽 3시가 되어도 비가 그치지 않았다. 그러나 '새벽 출정'을 미룰 수는 없었다. 전북 남원의 국립종축원에서 시작된 산행은 비를 맞으며 계속됐다. 5월 초순이었지만 산 속의 봄비는 차가웠고,한기가 몸을 파고들자 "내가 왜 이 길을 가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3시간가량의 산행을 거쳐 마침내 해발 1천1백67m의 지리산 바래봉에 올랐다. 그러나 하늘은 개지 않았다. 벌써 5년째,지리산 철쭉 사진은 쉽지 않았다. 해가 뜬 직후의 찬란한 햇살을 머금은 철쭉. 이번만큼은 한 컷을 건질 수 있으리란 기대는 번번이 빗나갔다. 높은 산엔 기후변화가 잦았다. 그 때문에 궂은 날씨에도 산을 오르게 되는 것이니,그날 필자는 철쭉 군락지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비가 그치길 기다렸다. 도시락을 먹고 나니 졸음이 몰려왔다. 깜빡 깜빡 졸다 눈을 떠보니 구름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바람과 함께 구름이 수천 가지 형태로 변해가더니,아 그토록 고대하던 햇살이 내리는 것이었다. 부리나케 카메라에 눈을 갖다댔다. 햇빛이 빗물 머금은 철쭉꽃을 찬란하게 비춰주고 있었다. 그 장면들을 10여통의 필름에 정신없이 담았는데,카메라를 벗삼은 지 30년 만에 비로소 절대 순수와 절대 미의 한 순간을 포착할 수 있었다. 그 희열을 어찌 말로 형용할 수 있으랴. 지금도 주위에선 "왜 그토록 사진찍기를 탐하느냐" "등산도 힘겨운데 웬 카메라 장비냐" "뭣 때문에 그런 무모한 고생을 하느냐"고 말한다. 어쩌면 카메라가 내 인생의 동반자인지도 모르는데,그 사연들을 어찌 낱낱이 밝힐 수 있으랴. 우선 카메라 렌즈는 속세에 찌든 마음을 정화(淨化)시킨다. 피사체를 바라보는 순간,세속적 번민이 지워지고 그 자리에 사물들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들어앉는다. 필자는 5년을 기다려 비로소 철쭉 사진 한 장을 얻을 수 있었다. 철쭉은 해마다 그곳에서 피고 졌다. 사물은 언제나 그곳에 있지만 그것을 담아내는 데는 '작가정신'이 필요하다. 작가가 이미 정돈된 마음을 갖고 있어야 그 사물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 마음이 없으면 기계와 테크닉의 노예가 되고 만다. 사진은 결국 작가의 머릿속의 정돈된 생각을 찍어내는 것이다. 그 생각과 빛이 어우러져 비로소 하나의 찬란한 풍경을 탄생시킨다. 사진을 찍는다는 건 마음속의 형상을 자연물 속에서 찾는 것이며,그것이 곧 내 마음을 발견하는 길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