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소비자보호원에 따르면 지난해 의료분쟁 피해 구제를 요청한 사람들의 가장 큰 불만은 병원에서 진료기록 사본 발급을 지연 또는 거부한 점이었다. 뿐만 아니라 요청자의 88.1%가 진료기록이 영어나 의학 전문용어로 작성돼 이해할 수 없다고 얘기했다. 실제 병원의 진료기록부는 잘 보여주지도 않지만 봐도 암호같아 무슨 내용인지 알기 어렵다. 많은 경우 영어로 휘갈겨져 있는데다 땀띠처럼 쉬운 것도 한진(汗疹)이라고 쓰고, 손저림증은 수근관증후근, 심장마비(heartattack)는 '카디악 어레스트'(cardiac arrest) 등으로 기록하는 탓이다. '환자 권리장전'엔 질병과 치료방법 부작용을 알고,충분한 의료서비스를 알맞은 방법으로 받을 수 있는 권리가 포함돼 있다. 하지만 그러자면 환자나 보호자가 병명 등 각종 의료용어를 알아야 하는데 한자 영어 라틴어 일본식 표현이 뒤섞여 있는 현 상태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용어 쉽게 만들기가 의료계의 주요이슈로 대두된 것도 이런 까닭이다. 급기야 대한의사협회는 지난해 초 '우리말 의학용어집'을 펴냈다. 견갑골은 어깨뼈,이개(耳蓋)는 귓바퀴,안검은 눈꺼풀,구제역은 입발굽병,봄철 아이들에게 유행하는 수족구병은 손발입병으로 바꾸고 췌장과 이자, 골다공증과 뼈엉성증 등은 함께 쓰도록 한 내용이다. 그러나 한글용어에 대해 거부감을 보이거나 새 용어집이 나온 것조차 모르는 의사가 많은 게 현실이다. 결국 통계청에서 내년부터 '한국 표준질병·사인분류'를 우리말 용어 중심으로 개정,시행한다고 한다. 취한증은 땀악취증,맥립종은 다래끼,소양증은 가려움,누선염은 눈물샘염으로 고친다는 발표다. 오래 써온 전문용어를 바꾸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전문용어와 단순한 우리말 사이에 미묘한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병원을 찾는 환자나 보호자는 의사 앞에 선 것만으로도 두렵고 잔뜩 위축돼 있다. 가능한 한 쉽게 설명해주면 아픈 것도 서러운 이들에게 한결 위안이 되고 그럼으로써 멀기만 한 의사와 환자의 거리 또한 좁힐 수 있을 게 틀림없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