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6대 그룹 80개 계열사를 대상으로 부당내부거래 조사에 착수하자 재계가 강력 반발,정부와 재계간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공정위는 주요 그룹의 결합재무제표 발표결과 내부거래가 줄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있어 자료를 요청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실제로는 대선을 앞둔 '대기업 길들이기'가 아닌가 하는 것이 재계의 시각이다. 재계가 이처럼 반발하는데는 나름대로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본다. 공정거래법에 입각한 부당내부거래 조사는 뚜렷한 혐의가 포착됐을 때만 실시하는 것이 원칙인데,이번에는 그런 혐의가 발표된 게 없어 조사의 명분이 분명치 않다. 오히려 역대 정권이 정치적 고비 때마다 '대기업 손보기'를 국면타개용 카드로 이용해왔음에 비추어 이번에도 그같은 정치적 이유가 개재되지 않았나 하고 재계가 의문을 갖는 것도 결코 지나친 일이 아니다. 아마도 정부로서는 그동안 주5일 근무제 등 주요 경제사안마다 정부와 다른 목소리를 내온 재계를 길들여야 할 필요성을 느꼈을지도 모르며 이를 위해서는 재벌개혁 마무리라는 명분을 내세워 공정위가 나서는 것이 부담이 적을 것이라는 판단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공정위의 이번 조사는 명분이 무엇이든 납득하기 어렵다. 기업개혁이 현 정권의 4대 개혁목표 중 하나임을 모르는바 아니지만 지금까지 기업분야만큼 가장 확실한 개혁성과를 올린 부문도 찾기 힘들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기업의 투명성이 높아졌다고 정부 스스로 여러차례 공언한 바 있고 연초 이남기 공정거래위원장이 올해는 대기업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를 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도 이같은 기업개혁의 성과를 인정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느닷없이 내부거래 조사라는 칼을 빼든 것은 앞뒤가 맞지 않을 뿐더러 정책에 대한 신뢰를 스스로 짓밟는 처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공정위는 부당내부거래 조사가 정상적인 고유업무의 수행이라고 주장할지 모르지만 기업활동을 위축시키는 전면조사를 뚜렷한 이유도 없이 언제라도 벌일 수 있다는 발상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지금은 미국경제불안,증시침체 등으로 기업의 투자의욕이 움츠러들고 있어 보다 과감한 규제완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공정위의 부당내부거래 조사행위를 놓고 위헌소지 논란까지 벌어지고 있어 공정위로서는 어느때보다 신중한 처신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공정위의 처사가 공정치 못하다는 인상을 주어서야 말이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