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적당히 했으면 좋겠습니다.


계속 들떠 있으면 일본기업과 관청들을 상대로 일하기 힘들어집니다."


도쿄 주재원 10년째인 K씨. 일본 동종업계의 최근 동향과 관청·시장정보를 수집 분석하는 게 업무의 하나인 그는 최근 한국기업들이 잘 나간다는 뉴스가 들려올 때마다 답답해지는 현상이 생겼다며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회사가 쭉쭉 뻗고,일본 기업들보다 잘 하는 걸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문제는 이를 알리는 방법과 진짜 속사정에 있는 겁니다."


그는 미국과 일본경제가 흔들리는 와중에 한국경제와 기업들은 승승장구하고 있다고 알려진 이후 일본측 기류가 묘하게 변하는 걸 체감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자료와 정보를 못이기는 척 하나둘씩 풀어주던 일본측이 꼬리를 내리는 기색이 역력해졌다는 것이다.


"한국이 우리보다 잘하고 돈도 잘 버는데 무얼 도와달라느냐며 커튼을 치는 겁니다.


칭찬과 겸손을 앞세우고 그 뒤에 숨어버리는 거지요."


그는 일본사회의 시각이 '한국은 뜨고,일본은 비틀거린' 금년 상반기 중 특히 많이 달라진 것 같다고 귀띔했다.


반도체 철강 등에서 한국기업들이 일본 라이벌을 코너로 몰고,월드컵 축구에서 한국이 4강 신화의 위업을 쌓자 '굉장하다'는 찬사가 부쩍 늘었다는 것이다.


그는 그러나 칭찬과 찬사의 정확한 의미를 냉정히 따져 봐야 할 때가 됐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의례적 수사로 진심을 가린 채 화끈한 공세를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본인들의 일보 후퇴를 '패배 인정'으로 오해하지나 않을지 걱정스럽다는 것이다.


"한국에 비친 일본의 위상은 예전에 비해 말이 아닙니다.


하지만 아직 정보와 돈을 더 캐내고 끌어당겨야 할 쪽은 어디입니까."


그는 한국의 일본 추월에 필요한 것은 땀과 의지,그리고 일본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지혜이지,지나친 자신감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와 헤어진 뒤 들른 한 서점에는 일본의 파산·추락을 주장했던 서적들이 자취를 감추고 부활·재생을 제목으로 단 신간이 베스트셀러 코너를 점령하고 있었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