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제약사 시대가 온다.' 전문가들은 다국적 제약사가 언제 국내 시장을 석권할 것이냐 하는 문제만 남았다고 진단한다. 그 근거는 무엇인가. 바로 다국적 제약사에 유리하게 짜인 현행 의약분업 체제 때문이다. 우선 의사들은 다국적 제약사의 고가 전문약을 중심으로 처방할 수밖에 없다. 의사들은 뛰어난 약효를 내세워 다국적 제약사 제품을 선호한다. 의약분업으로 약품 마진이 사라지면서 굳이 값 싼 국산약을 처방할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정부는 1999년 11월20일 고시가격제도를 실거래가격 상환제로 바꾸었다. 관행화된 마진을 인정하지 않고 실제 거래가격대로 약값을 쳐주기로 한 것이다. 로비도 다국적 제약사 제품을 선택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다국적 제약사들은 학회 참석 등을 이유로 의사들에게 엄청난 돈을 지원하고 있다. 한국MSD는 술값 골프비 명목으로 98년 4월부터 2000년 12월까지 5백47차례에 걸쳐 2억4천만원을 지출했다. 의사들이 효과가 뛰어난 약을 처방해 환자에게 칭찬을 듣고 메이커로부터 대접도 잘 받을 수 있는 길을 택하는 것은 당연하다. 건강보험 재정 적자에 신경을 쓸 이유가 없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다국적 제약사가 뜰 수밖에 없는 구도다. 이는 수치로도 증명된다. 올 상반기중 10대 의약품 가운데 다국적 제약사 제품이 8개나 됐다. 한국화이자의 고혈압 치료제 '노바스크'는 지난 한햇동안 2000년에 비해 79% 늘어난 1천1백82억원어치가 팔렸다. 전문약 가운데 처음으로 1천억원대를 돌파한 것이다. 매출도 크게 늘어났다. 지난해 매출 20위 안에 들어간 다국적 제약사는 6개사에 달했다. 2000년에는 4개사에 머물렀다. 한국화이자는 2000년보다 48.6% 늘어난 1천7백21억원의 매출을 기록, 7위에 올랐다. 당기순이익도 1백87억원으로 65.3% 늘어났다. 한국로슈는 95.4% 늘어난 1천1백64억원으로 15위에 올랐다. 글락소스미스클라인(11위)과 한국MSD(16위)의 매출도 각각 51.2%, 65.1% 증가했다. 지난 2년 동안 다국적 제약사의 매출은 연 30%씩 늘어났다. 증권거래소와 코스닥 상장 국내 제약업체들이 같은 기간중 불과 8.8% 성장한 것과 딴판이다. 다국적 제약사의 고가 전문약 점유율도 급상승하고 있다. 같은 성분과 함량, 제형 중에서 가장 비싼 고가약의 점유율이 2000년 1월 27.2%에서 최근에는 50% 이상으로 높아졌다. 한국에서 의약품을 생산하는 다국적 제약사는 28개. 업계는 지난해 다국적 제약사의 완제 의약품(원료 및 의약부외품 제외) 시장점유율이 25%에 이른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올해는 점유율이 36%선에 이를 것이라는게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현재 추세라면 앞으로 3년 안에 절반 이상을 차지, 국내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을 것으로 보고 있다. 변수는 정부 약값정책의 향방이다. 실거래가격 상환제로 대표되는 현행 약가제도를 개혁할 경우 시장 상황에 큰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의약품가격 재평가제도와 참조가격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약을 싸게 구매하는 의료기관에 인센티브를 줘 저가약 구매를 유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같은 제도 개혁이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미국 등의 통상압력 여파를 뚫고 가격통제 정책을 관철시키기는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의사와 환자들의 오리지널약 선호 의식을 깨뜨리는 것도 간단치 않다. 다국적 제약사의 돌풍에 제동이 걸릴 수 있을지 주목된다. 최승욱 기자 sw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