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이 이달 1일부터 '주5일 근무제'를 실시하고 있다. 그러자 '은행이 노니 우리도 놀자'라는 인식이 모든 근로자들에게 퍼져 나가고 있다. 근무시간 단축이 세계적 추세인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문제는 충분한 논의와 준비 없이 조급하게 제도를 도입하려는 데 있다. 노사정위원회가 주5일 근무제 실시 여부를 둘러싸고 2년 넘도록 머리를 맞대고 있어도 합의를 보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일부 산별노조에 의해 실시되고 있는 것은 정부의 무능력 탓이라고 지적받아 마땅하다. 전경련 기협중앙회 등 경제5단체는 얼마 전 '주5일 근무제를 실시하는 은행과는 거래를 끊겠다'며 강경대응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사회 일각에서는 '주5일 근무제도는 고용 증가와 근로자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경제성장에도 기여한다'며 '장밋빛'으로 포장하고 있어 국민들을 혼란시키고 있다. 근무시간 단축은 실업문제로 고통받는 유럽의 일부 국가에서 실시한 '일 나누기(Work sharing)'에서 시작됐다. 이 '일 나누기'는 근로자 전원이 일을 분담함으로써 노동시간 단축과 실업자 방지를 꾀하는 새로운 노동관리 형태다. 그러나 근로자가 고통을 나눔으로써 실업을 줄인다는 긍정적 측면만 보이던 '일 나누기'제도가 지금까지 예측하지 못한 부정적 측면이 드러나고 있어 이 제도를 시행하는 나라들이 어려움에 빠져 있다. 이 제도로 실업문제를 해결했다는 네덜란드와 프랑스의 사례를 보면,'일 나누기'는 실업률이 10% 이상 급격히 높아질 때 일시적 조치로 활용해야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높은 실업률로 고통받던 프랑스는 사회당의 리오넬 조스팽 정부에 의해 2000년 1월부터 종업원 20인 이상 기업체에 대해 주35시간 근무제를 도입,실업률을 12.5%에서 8.9%까지 떨어뜨렸다. 그러나 '고용은 유지되지만 경쟁력이 저하된다'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특히 모든 산업에 일률적으로 이 제도를 도입하면 국가경제에 많은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음이 나타났다. 다시 말해 근무시간단축은 노동시간에 비례해 성과를 올리는 직무에 적용되는 것으로,시간과 관계없는 재량노동형 직무에는 도리어 단점이 많다는 것이다. 또 주35시간 근무제 아래 생산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각자 역할에 맞는 숙련도가 골고루 갖춰져야 하며,일정한 생산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근로자는 잠시도 쉴 틈이 없게 된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주35시간제는 마치 예술가에게 35시간 안에 작품을 만들어 내라고 강제하는 것과 같다'며 반발하고 있다. '네덜란드 모델'이라고까지 극찬을 받던 네덜란드의 '일 나누기'도 지금은 그 부작용을 애써 감추려 하고 있다. 이 제도를 도입하면서 정부는 고용의 유동성을 높이기 위해 법인세를 인상함으로써 기업들의 국제경쟁력을 약화시켰고,병원과 학교는 날이 갈수록 황폐해지고 있다. 이로 인해 집권 노동당은 지난 5월 선거에서 참패했다. 그런데도 네덜란드 정부는 이 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이는 '일 나누기'가 이미 '노동자의 권리'로 정착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이달부터 주5일 근무제가 금융권에서 실시되어 근로자 삶의 질이 선진화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하고 있다. 그러나 '일 나누기'는 그런 기대를 무산시켜 버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 왜냐하면 사회적 인프라가 아직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능력개발을 위한 재충전도 그 비용이 만만치 않다. 그렇다고 부업도 마땅치 않다. 결과적으로 노사 모두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게 되고 있다. 정부가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임금 감소를 막기 위해 임금보전에 관한 법까지 만든 것은 나라 돈으로 임금을 주는 사회주의 국가적 발상이라고 본다. 정부는 '일 나누기' 문제점의 해법을 마련해 두지 않으면 안된다. 임금 증감과 근로의욕에 직결되는 주5일 근무제는 법에 의해 강제하지 말고,시장원리에 따라 사업장마다 사용자와 근로자가 도입 여부를 결정해야 할 일이다. coreconsultant@hanmail.net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