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기업가정신이 가장 왕성한 나라는 한국이다" 세계적인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 박사가 새 저서 "넥스트 소사이어티"에서 밝힌 내용이다. 그가 이렇게 진단한 까닭은 다음과 같다. "한국에는 약 40년전만해도 기업이 전혀 없었다. 한국을 지배한 일본이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이 끝날 무렵 남한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하지만 오늘날 약 24개 산업은 세계 일류수준이고 조선과 몇몇 분야는 선두주자로 올라섰다." 그의 지적처럼 한국의 기업가정신은 왕성하다. 이는 창업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외환위기때 주춤했던 창업은 다시 열기를 뿜고 있다. 벤처거품이 사라지고 있는데도 지난 상반기중 서울 부산 등 7대도시 창업은 1만9천57개에 달했다.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11.4%나 늘었다. 연간으로 약 4만개에 이를 전망이다. 하룻밤 자고나면 약 1백30명이 사장자리에 앉는다. 여성창업이 봇물을 이루는 것은 물론이고 대학생,심지어 고등학생까지 창업대열에 뛰어든다. 하지만 어느 정도 업력을 가진 업체의 경영자들까지 기업가정신이 충만한가. 기업가정신을 새로운 사업에 대한 도전정신과 모험정신으로 해석한다면 이에 대한 대답은 그리 긍정적이지 못하다. 기업인수합병(M&A) 시장에 가보면 이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사업의욕을 잃고 기업체를 팔아달라는 주문이 수천건에 이른다. 너무 많다보니 상품가치가 떨어지는 기업은 아예 매물리스트에 올려주지도 않는다. 부실기업들뿐 아니라 멀쩡한 기업들조차 매각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창업은 느는데 기존 기업은 팔려고 아우성이다. 마치 공부를 시작하겠다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어린이는 많은데 정작 깊이있게 학문을 연구해야할 대학생이나 대학원생은 줄지어 자퇴하고 있는 꼴이다. 왜 이런 괴리가 생길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사업을 확대하면 확대할수록 거미줄같은 각종 규제에 걸려 상심한 기업인도 있다. 공장 하나 지으려면 인.허가를 받기 위해 여전히 수십군데를 다녀야 한다. 실업자는 넘쳐나는데 생산인력을 구할 수 없어 의욕을 상실한 경영자도 있다. 그나마 어렵게 외국인을 구하면 다른 기업이 월급을 몇푼 더 제시하며 가로채 간다. 정책자금은 수십종에 이르고 은행엔 돈이 넘쳐나지만 정작 돈이 필요한 기업은 대출받기 어렵다. 기술력은 있지만 담보가 부족한 업체가 자금 구경하기 힘든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이제 우리는 중소기업 정책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시점에 온 것 같다. 구직난시대에 겪어야 하는 구인난,자금홍수시대에 당하는 자금난,규제완화시대에 체험해야 하는 거미줄같은 규제 등이 왜 끝없이 이어지는지 머리를 맞대고 따져봐야할 때가 됐다. 필요하다면 정책을 제로베이스에 다시 생각하는게 나을지 모른다. 예컨대 정책자금을 신용과 담보력,사업성 3박자를 모두 갖춘 우량 중소기업에게 장기저리로 지원하지 말고 아예 대출금리를 시장금리보다 높여 담보부족으로 은행돈을 못쓰는 우수기술 중소기업에 지원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 우량 기업은 정책자금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직.간접금융시장에서 돈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21세기는 작고 빠른 기업이 경쟁력을 갖는 시대다. 이런 특성을 지닌 중소기업이 강해지지 않으면 국가경쟁력은 생겨날 수 없다. 기업의 경쟁력은 경영인들로부터 나온다. 이들의 기업가정신을 되살리려면 기업환경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시점이 온 것 같다. 그 논의는 빠를수록 좋다. 스피드 자체가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