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중순 유한양행은 영국계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으로부터 차세대 위궤양 치료제인 'YH1885'의 공동 개발을 중단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위염 위궤양 십이지장궤양 역류성 식도염 등 4가지 질환의 치료제로 개발된 신약 후보물질 YH1885의 임상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유한양행에 비상이 걸렸음은 물론이다. 유한양행은 "백인들이 많이 걸리는 역류성 식도염에 초점을 맞춰 임상실험을 한번 실시한 것만으로 약효가 없다고 할 수 있느냐"며 항의했지만 소용없었다. 그간 개발한 모든 기술자료를 제공하고 기껏 2백만달러의 기술료만 받는 것이 허탈할 뿐이었다. GSK는 지난 2000년 10월 기술료 1억달러와 매출의 10% 이상을 경상로열티로 주는 조건으로 YH1885의 임상실험과 독점 판매권을 확보했다. 이같은 사례는 유한양행만이 아니다. GSK가 지난 97년 라이선싱했던 LGCI의 항생제 '팩티브'도 마찬가지다. GSK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팩티브 최종 승인을 앞둔 지난 4월 갑자기 공동개발 및 판매계약을 포기했다. FDA의 승인이 늦어지는데다 새로운 항생제가 시장에 나와 팩티브의 예상 매출이 준다는게 이유였다. 다만 팩티브가 해외 임상실험을 마쳤기 때문에 4천4백만달러의 기술이전료와 원료비를 받았다. LG는 또 FDA 승인과정에서 GSK가 협력한다는 약속을 받기로 했다. 국내 신약이 세계 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다. 수억달러의 돈이 들어가는 해외 임상실험과 까다로운 FDA 승인, 마케팅과 판매를 위해 다국적 제약사들과 협력해야 한다. 그러나 다국적 제약사쪽 사정은 다르다. 신약을 개발한 국내 제약사들에 좋은 조건을 제시했다가 상황이 달라지면 가차없이 제휴관계를 청산한다. 이 과정에서 국내 신약기술 정보가 고스란히 넘어가고 마는 것이다. 다국적 제약사의 횡포는 이뿐만 아니다. 해외에서 직접 수입한 의약품에도 보험이 적용되면서 국적 제약사와 토종간 합작관계가 잇따라 깨지고 있다. 중외제약은 지난 80년대 중반부터 미국 머크에서 원료를 공급받아 생산해온 티에남(항생제) 등 4가지 약품의 판매를 지난해 말 중단했다. 머크가 국내 판매권을 현지법인인 한국MSD에 일방적으로 넘겨서였다. 마케팅력을 확보한 상황에서 국내 제약사들에 기술정보와 제조공정을 알려주면서까지 합작할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맨소래담도 2001년 11월30일 보령제약이 3년째 맡아온 소염진통제 맨소래담(제품명)판매권을 다국적 유통회사인 쥴릭파마에 넘겼다다. 보령제약은 지난 98년 말부터 맨소래담 판매를 대행, 3년 만에 연 50억원에서 80억원 수준으로 매출을 끌어올렸다. "자체 영업력을 바탕으로 맨소래담의 인지도를 높이고 시장을 확대하는 등 재계약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음에도 맨소래담측이 사전 협의 없이 계약만료 3개월을 앞두고 갑자기 계약을 해지했다"는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다국적 제약사들은 국내 제약사의 영업력을 활용,제품을 팔다가도 시장이 어느 정도 확보되면 제휴관계를 끊기 일쑤다. 합작관계를 유지할 때도 중요한 정보나 핵심 기술에 대해선 비밀을 유지한다. 대웅제약은 합작사인 대웅릴리의 실적이 계속 악화되고 있음에도 기술 축적이 이뤄지지 않자 지난 98년 미국 일라이릴리와의 합작관계를 청산했다. '한국측에 기술만은 내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