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는 로댕의 유명한 '칼레의 시민'상이 있다. 이 조각상에 관한 이야기는 영불 1백년 전쟁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칼레를 포위한 영국군 사령관은 프랑스 칼레시의 항복의사를 접하고 그 동안 저항한 죄를 물어 시민 6명을 추방할 것을 요구한다. 칼레 시민들이 이 문제를 논의한 결과 7명이 자원하게 됐다. 하지만 1명이 필요없게 되자 자원한 7명은 마음속으로 동요하게 된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쳤기 때문이다. 지도자격인 유스타트 생피에르는 동틀녘까지 도착한 사람 가운데 선착순으로 6명을 선택하기로 제안한다. 아침이 되자 유스타트 생피에르를 뺀 6명이 도착했다. 성난 군중들이 그의 집으로 몰려갈 때 아들의 관을 들고 오는 그의 아버지와 마주친다. 유스타트 생피에르는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6명과 뜻을 같이 했던 것이다. 물론 애국심은 칼레 시민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얼마전 서해교전에서 산화한 5명의 용사들과 부상한 장병들의 애국심도 칼레 시민 7명의 그것과 비추어 볼 때 손색이 없다. 젊음과 목숨, 그리고 신체의 일부를 바친 그들이야말로 국가에 대한 최고의 헌신자가 아니겠는가. 지금도 하루아침에 다리 하나를 잃게 된 서해교전 용사의 울부짖음이 들리는 듯하고,한편 그들의 조국애를 물질적으로나마 충분히 보답하지 못하는 우리자신이 부끄럽다. 또 목숨까지 바친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젊은 에너지를 남김없이 분출한 이번 우리 축구선수들의 헌신도 애국심의 발로다. 떠나간 히딩크 감독도 언젠가 우리 한국선수들의 태도에 대해서 인상적으로 말한 바 있다. 서구의 프로 축구선수들은 자신들의 목표와 관련해 몸값높이기 등,일신의 안전과 명예만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하는데 비해 한국선수들은 자신들의 몸값보다 조국의 영광과 조국의 승리만을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돈이나 명예보다 국가의 영광을 우선시하는 한국 축구선수들의 마음은 히딩크를 감동시켰다. 결국 그들은 태극전사가 됐고,그들의 투지는 붉은 악마의 헌신적 응원과 어우러져 조국의 명예를 드높였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을 직접 짊어지게 된 공직자들의 애국심과 조국애는 어떤가. 공직자들은 적어도 일반 군인이나 축구선수들 못지않게,혹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들보다 더 투철한 국가관을 보여야 마땅하다. 그들은 직업상 국가에 헌신하기로 작정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목숨까지 바칠 필요는 없지만,적어도 일상적으로 자기자신의 사적 이익이나 안락함 등을 희생할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하지만 공직에 임명될 때나 선거에 나설 때마다 국적문제나 세금납부,병역문제 등이 개운치 못해 논란을 빚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정치적 능력이나 역량 및 정책적 입장에 대해서는 검증할 여지도 없이 '자질론'이 대세를 이룬다. 지금 장상 총리서리의 아들에 대한 국적문제와 관련, "총리가 될 줄 알았으면 한국 국적포기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려깊지 못한 해명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도 이점에서 유감스럽다. 우리는 국가공동체안에서만 사는 것은 아니다. 가족공동체도 소중한 공동체다. 가족의 안위나 행복을 보살피는 일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막중한 의무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가족의 안위나 행복이 국가의 안위나 행복과 충돌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국가간의 장벽이 엷어지는 국제화시대라고 해도 조국이 존재하고 정치공동체가 존속하는 한,가족애와 조국애가 충돌할 가능성은 상존한다. 이 경우 공직자라면 가족애보다 조국애를 앞세울 수 있는 용기와 결의를 가져야 한다. 물론 이것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누구라도 만인앞에 자신의 사생활이 남김없이 벗겨질 공직자가 될 줄 알았다면,그 이전에 십분 조심하고 신중한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사회에서는 누구라도 언젠가 공직자가 될 가능성과 확률이 있다. 그래서 항상은 아니지만 중요한 결정에서 가정이나 사적인 안락함보다,국가공동체에 대한 헌신의 우선성을 고려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공직자나 공직자가 되기를 소망하는 사람들이 서해교전 용사나 축구선수들 못지않게 또 다른 태극전사가 돼 조국애를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parkp@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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