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외형만 부풀리는 거대 기업을 추구하기보다는 의(義)로서 기업윤리를 철저히 지켜가며 사회에 봉사하는 알찬 기업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고 박정구 회장은 41년간 그룹 경영일선에 참여해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선 굵은 경영을 폈던 경영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소탈한 성격에 인정이 많아 직원들이 잘 따랐고 집념이 강해 공격적이고 도전적인 경영을 펼쳤다. 1960년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곧바로 선친인 고 박인천 회장이 창업한 금호그룹에 몸담았다. 지난 81년 한해 적자가 50억원이 넘는 금호타이어 대표이사를 맡아 2년 만에 순이익 1백20억원의 흑자기업으로 탈바꿈시키면서 84년 일본의 권위있는 기업인 상인 이글 클럽(Eagle Club) 최고경영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를 발판으로 금호타이어는 세계 10대 타이어 메이커로 받돋움했고 금호석유화학은 세계 7위의 합성고무 업체로 성장했다. 택시 2대로 출발했던 금호고속은 국내 최대 운수업체로 올라섰다. 고 박 회장의 최대 업적은 중국시장 진출이다. 금호는 96년께 국내업계로는 처음으로 난징에 타이어 공장을 준공하는 한편 현지 고속버스 운송업에 뛰어들었다. 난징 공장은 영업개시 3년 만인 2000년 흑자로 돌아서 지난해에는 매출액 1천3백억원에 1백억원의 경상이익을 냈다. 선전 우한 항저우 등 중국 6개 지역에서 벌이고 있는 고속버스 운송사업도 60여개 주요 노선을 확보하며 각 성(省) 내에서 최대의 운수회사로 자리잡았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단기 유동성 문제와 정부의 대기업 개혁 요구 등에 직면해 그룹이 어려움을 겪자 사업 구조를 과감히 개편하면서 위기를 정면 돌파했다. 금호생명과 동아생명을 합병한 것을 비롯해 금호종금과 금호캐피탈,금호타이어와 금호건설 등을 각각 합쳐 사업간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한 것. 최근에는 금호타이어 지분을 해외 매각키로 하는 등 한층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말단 사원부터 그룹 총수에 오르기까지 고 박 회장이 직원들에게 한결같이 강조한 것은 '정직'이었다. 부하직원이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솔직히 보고하면 크게 책임을 묻지 않았지만 허위로 일을 처리한 직원들에게는 모질다 싶을 정도로 혹독하게 대했다. 이런 그의 철학은 "정직하고 깨끗하게 얻는 이익만이 가치가 있다"는 어록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는 국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국민과 기업 정부 학계 언론계가 하나가 돼 각자의 맡은 역할을 수행하며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5위(位)1체(體)론'과 아무리 기술과 경영,품질을 혁신하더라도 이미지를 높이지 못하면 제값을 받지 못한다는 '이미지 가치창조론'을 주창해 재계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강동균 기자 kdg@hankyung.com [ 박정구 회장 약력 ] 1937년 8월10일 출생 1960년 연세대학교 법학과 졸업 1972년 (주)금호고속 대표이사 1981년 금호타이어 대표이사 1984년 국민훈장 모란장 수훈 1985년 금호건설 대표이사 1990년 금호그룹 부회장 1996년 금호그룹 회장 1996년 국민훈장 무궁화장 수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