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가치가 가파른 오름세를 타고 있다. 달러화에 대한 원화가치는 최근 10% 가량이나 상승해 달러당 1천2백원대가 무너졌다. 기업들은 수출경쟁력이 약화된다며 아우성이고 정부는 시장에서 직접 달러 사들이기에 나섰다. 말할 필요도 없이 환율은 기업경쟁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업종이나 기업별로 차이는 있지만 조사자료 등을 종합해보면 국내기업들은 대체로 달러당 1천1백∼1천1백50원 정도라면 견딜 만해 보인다. 하지만 이제는 달러당 1천원 이하 시대에도 미리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 돼가고 있다. 원화가치의 상승은 피하기 힘든 대세인 듯 하기 때문이다. 우선 우리나라의 경제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견조하다. 최근 세계경제는 좀체 불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한국은 높은 성장률을 이어왔다. 최근엔 한국은행이 올해 GDP(국내총생산) 성장률 전망치를 5.7%에서 6.5%로 상향 조정하기도 했다. 경제가 괜찮으면 통화가치는 올라가게 마련이다. 외환사정도 크게 좋아진 상태다. 나라 금고가 비어 IMF(국제통화기금) 관리사태까지 겪었지만 최근의 외환보유액은 1천1백억달러를 넘어 세계 4,5위를 다투고 있다. 풍부한 외환보유액은 한편으로 우리 경제가 얼마나 원화약세의 덕을 누렸는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사실 통화가치가 일시적으로 대폭락했던 IMF 관리체제 초기 시절을 제외하면 원화가치가 지금처럼 낮은 시절은 찾기 힘들다. 현재의 원화가치는 1980년대 말에 비하면 절반수준에 가깝다. 경제적으로 보기 드문 성공사례로 꼽히는 나라의 통화가치가 장기적으로 하락세를 보여왔다는 것은 어찌 보면 불가사의한 일이다. 일본의 경우는 경제성장과 함께 엔화 가치도 대체로 상승세를 그려왔다. 한때는 달러당 80엔에 이르렀던 엔화가 지금은 1백20엔 안팎을 나타내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상승추세를 이어왔다. 엔화 상승의 계기가 됐던 85년의 플라자합의 당시만 해도 엔화가치는 달러당 2백50엔선이었고 그 이전엔 3백엔대였다. 우리나라와는 정반대다. 엔화와 원화가치는 80년대만 해도 2∼3배 가량의 차이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10배 정도로 벌어져 있다. 이런 면들을 생각하면 원화강세는 추세적 현상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따라서 기업들도 원고(高)시대에 대비한 경영전략을 준비해야 할 것 같다. 대응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우선 상품의 품질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고 거래통화의 다양화,수출지역 다변화,해외조달 강화 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동안 구조조정을 했다고는 하지만 원고시대에도 버텨나갈 수 있을 만큼 체질강화가 이뤄졌는지도 점검해야 한다. 정부차원에서의 경제정책 역시 이같은 흐름에 대한 대비가 필요함은 말할 필요가 없다. 돌이켜보면 IMF경제위기는 원화강세에 대한 대응을 게을리했다가 겪게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화가치가 당시의 우리경제 실세 이상으로 고평가돼 물새 듯 돈이 빠져나가고 있는데도 우리는 너무나 둔감했다. 정부도 심각성을 몰랐고 기업들도 경쟁력 강화를 위한 대응을 게을리했다. 그 결과 부도가 나 문을 닫거나 주인이 바뀌는 기업이 줄을 이었다. 저평가된 통화가치는 수출기업에는 매우 달콤한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환율에만 의존해 경쟁력을 유지해갈 수는 없다. 환율수준이 아직은 견딜만 할 때 미리미리 경쟁력 강화를 위한 방안들을 실천에 옮겨야 한다. 그래야 IMF사태를 초래한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는 우를 범하지 않을 것이다. b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