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어느 신문을 보니 차기 정부의 조직개편을 염두에 두고 정부 각 부처들이 조직 존립의 당위성과 권한 확대를 위해 많은 예산을 쓰면서 연구용역을 하는 등 '살아남기 보고서'가 남발되고 있다고 한다. 정권 말기에 항상 있어 온 현상으로 충분히 예상되는 것이다. 그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어김없이 정부조직 개편이 있었으나 분명한 기본원리에 입각해 이뤄진 적은 거의 없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조직개편이 시대 변화에 따라 요구되는 정부의 '새로운 역할'과 '버려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를 찾으려는 방향에서 이뤄진 적은 더욱 없었다. 특히 경제적 측면에서 그간 크게 달라진 '경제운영의 기본 틀'과 일치하는 방향을 모색하는 정부조직개편 논의는 더더욱 없었다. 과거에 정부가 거시경제목표를 설정하고 자원배분에 깊이 간여해서라도 이를 달성하려고 했던 산업정책 위주의 경제운영 방식 하에서 오랫동안 우리 정부는 '공급자 중심의 기본 원리'에 입각해 '산업별'로 조직돼 경제운영을 뒷받침해왔다. 대부분의 경제부처는 일정한 산업이나 업종을 주 관심대상으로 하고 그 분야 발전에 책임지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하부 조직으로 구성돼 그 역할을 수행했다. 이러한 정부의 조직원리는 경제운용의 기본 틀이 '시장경제로의 전환'과 '글로벌 스탠더드의 수용'이라는 방향으로 크게 바뀐 지금까지도 전연 바뀌지 않고 있어 구호와는 달리 정부의 기능을 비시장적으로 작동하게 하는 주요인이 되고 있다. 우선 각 산업분야에서 정부주도의 카르텔이 광범위하게 형성돼 있고 관·민 통합형 공동행위가 다반사로 이루어져 정부 스스로가 경쟁시장 형성의 최대 적이 되고 있다. 다음으로,공공부문이 생산성과 무관하게 점점 확대되고 있다. 또 각급 정부 조직과 이에 종사하는 관료들은 국민경제 전체보다는 담당 분야 또는 산업의 이익을 우선 생각하게 돼 국제화의 흐름에 역행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 공급자 중심의 정부 조직구조에서 산업정책은 시장기능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쳐서 행해지기 보다는 '지원과 규제'라는 직접적인 수단에 의존하게 마련이어서 진정한 의미의 규제개혁을 기대하기 힘들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정부구조 하에서는 경쟁자의 행태와 수요자의 선택이라는 시장 신호에 따라 산업의 재편,생성과 소멸이 끊임없이 이루어져 자동적으로 구조조정이 이루어지는 시장경제의 이점이 제대로 살아날 수가 없다. 적절하지 않은 조직원리에 따라 편성된 정부조직에서 관료들이 열심히 일하는 것은,축구에서 후반전이 돼 골대가 바뀌었는데도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선수들이 볼을 차 결과적으로 자책골을 만드는 것과 비유될 만하다. 정부의 어느 부처나 그 하부조직이 특정산업을 전유물로 생각하고 그 산업의 발전에 대해 책임진다는 발상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시장경제도 국제화도 제대로 될 수 없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예컨대 재정경제부나 금융감독위원회가 금융회사들을 그 전유물로 생각하면서 금융과 관련된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책임지겠다는 발상을 버려야 한다. 특히 국제화된 시장을 바탕으로 기업 활동이 이뤄지고 정부가 수급 문제에 대해 해야 될 역할이나 수단이 거의 없는 전통적인 산업정책 분야를 담당하는 산업자원부 등은 그 기능이 전면적으로 재검토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농림부 보건복지부 교육부 등도 농산물·의료서비스·교육서비스의 생산을 관리하는 것에서부터 수요자들의 요구를 파악하고 국내외 시장을 통해 이러한 수요가 공급되도록 하는 쪽으로 기능의 중점을 바꿔야 한다. 이러한 문제인식이 관료사회에 없는 것은 관료의 속성상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지만,정권을 담당한 통치세력 역시 통찰력이 없었다는 것은 매우 답답한 일이다. 앞으로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나 차기 정부 초기에 가열될 정부조직 개편 논의에서 과거와는 달리 시대흐름을 반영하고 경제운용의 원리와 일치되는 방향에서 각급 정부조직이 재검토돼야 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공급자 보다는 수요자 중심''산업별 보다는 기능별'원리에 따라 각 부처의 기본임무 및 구체적 역할과 기능이 전면적으로 재검토되어지기를 기대한다. ihkim@shink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