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제2위 미디어그룹인 비방디 유니버설(Vivendi Universal·이하 VU)의 장 마리 레시에 회장이 이사회의 압력 끝에 사임하게 됐다는 소식이다. 비방디 유니버설은 유럽 최대의 유료 케이블TV 카날플뤼스(CANAL+)와 게임업체 블리자드의 모회사다. 1853년 설립된 뒤 건설ㆍ엔지니어링ㆍ통신ㆍTV 사업을 해온 프랑스의 비방디사가 2000년 가을 유니버설스튜디오 모기업인 캐나다의 시그램사를 3백40억달러에 인수하면서 생겨났다. 레시에 회장은 바로 이 VU 탄생과 성장의 주역이다. 카날플뤼스와 유니버설스튜디오 유니버설뮤직 등을 묶어 VU를 출범시킨 그는 유럽내 각국의 케이블TV를 합병하는 한편 지난해 봄 MP3.com을 인수했다. 미디어부문을 그룹내 핵심사업으로 집중 육성한다는 전략 아래 6월엔 광고사업 부문(Havas Advertising)을 매각하고 12월초 미국 위성TV업체 2위인 에코스타의 지분 10%를 매입해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뿐만 아니라 USA네트워크 오락부문을 1백3억달러에 인수,VU를 AOL타임워너의 뒤를 좇는 세계적 미디어그룹으로 만들었다. 그가 이처럼 방송망 확보에 주력한 건 영화 음악 등 콘텐츠 산업의 경우 생산 못지 않게 보급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탓이라고 한다. USA네트워크를 인수하면 미디어관련 매출을 3백20억유로(약 37조원)로 늘리는 동시에 미국내 매출을 20%대에서 40%로 증대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2년이 채 안되는 동안 5개사 이상을 인수 합병하면서 생긴 부채는 급기야 레시에 회장의 발목을 잡았다. USA네트워크 인수 후 무디스가 신용등급을 'Baa2'로 내린데다 부채 해결을 위해 환경부문 지분을 판 게 오히려 악재로 작용,주가가 13년만에 최저를 기록하자 도리없이 물러나게 된 것이다. 자유경쟁 원칙을 강조, 프랑스영화 보호를 주장하던 피에르 레스큐르 카날플뤼스 사장을 해임하고 미국식 경영을 강조했던 그가 미국측 이사들의 압력으로 그만두게 된 것은 아이러니컬하거니와 향후 세계 미디어시장이 어떻게 바뀔지 궁금하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